[경제직필] 최저임금, 너무 낮아서 문제다
9160원. 입사 10년차인 대구 성서공단 어느 노동자가 받는 시급이다. 산입범위 확대로 근속수당, 가족수당, 만근수당에 간식비, 교통비 등이 더해진 2022년 최저임금이다. 그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각종 수당이 기본급처럼 둔갑한 탓에 실제 오른 시급은 단돈 몇백원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최저임금으로 가족들 생계비를 벌려면 잔업에 특근까지 장시간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들에게 최저임금은 그 이상을 받아본 적 없기에 또한 최고임금이기도 하다. 지난주 민주노총 대구본부가 주최한 최저임금 증언대회에서 공개된 어느 금속노조 조합원의 이야기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그 최저임금마저도 주는 것이 아까워 이리저리 깎으려고 애쓴다. 주휴수당이나 휴게시간 없기는 부지기수이고 필수적인 준비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쳐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법도 어긴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최저임금 미지급 신고건수는 2019년 1260건, 2020년 1249건, 2021년 1048건이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는 같은 기간 근로감독으로 최저임금 미지급을 적발한 건수가 각 해 181건, 23건, 16건에 그친 데에서도 드러난다. 법치를 강조한다는 새 정부의 노동행정이 더 나을 리도 없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끝내 관철시켜 사용자들의 위법행위를 합법으로 둔갑시키려는 꼼수는 차라리 한심하다. 차등 적용이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길임을 그들이 모를까.
사실 지금도 최저임금은 절대 수준이 높기는커녕 너무 낮아서 문제다. 최저임금법 제1조에 명시된 제도의 본래 목적 그대로라면 누구든 전일제로만 일하면 임금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2021년 최저임금은 같은 해 비혼 단신 생계비의 약 80%에 그쳤다. 2022년 최저임금도 여태 2017년 비혼 단신 생계비에 못 미친다. 최저임금 노동자 다수가 2~3인으로 구성된 가구의 주 수입원인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표준적인 가구생계비에 크게 미달해 있다. 양대 노총이 주최한 5월 토론회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최저임금은 가구 유형별 비중을 고려한 평균 가구생계비의 60%를 소폭 상회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부양 자녀가 1명인 외벌이 3인 가구는 최저임금으로 가구생계비의 37.7%만을 충당할 수 있었다.
올해도 최저임금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이 2023년 최저임금 결정의 법정시한이다. 요즘에는 임금과 물가의 연쇄 상승 우려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눈에 띈다. 하지만 공정하게 따지자면 그런 주장은 좀처럼 지지되기 힘들다. 최근 실증연구에서는 최저임금의 물가에 대한 효과가 대체로 크지 않다는 점에 대해 동의가 형성되고 있다. 임금이 오르면 생산성이 자극되는데 이로 인해 임금 몫(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의 비율)이 늘면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보고되었다. 더욱이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내년까지 국내총생산이 잠재수준에 못 미쳐 임금의 물가압력이 제한될 예상이다.
기실 물가의 영향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이미 크게 떨어졌다. 작년 4분기 생산자물가가 전년 대비 9.3% 오를 때 상품 단위당 평균노동비용은 1.4% 상승에 그쳤다. 지금 노동자들의 처지는 일부 대자본과 금융회사가 경험한 ‘횡재’와는 차이가 크다. 기업이 가격 올리는 것은 당연시하면서 노동자들한테만 실질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정부나 보수 학계의 조언은 그런 점에서 가당치 않다.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세르파스 스톰 교수는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독과점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가격 상승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어쩌면 미국처럼 임금 말고 독과점기업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이윤과 물가의 연쇄 상승’부터 경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의 지불능력 한계라는 난제와 충돌하는 중이다. 그러나 문제가 다르면 해결 수단도 달라야 옳다. 소상공인들이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은 최저임금을 제대로 안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정책 수단으로 접근해야 맞다. 이를테면 새 정부도 약속한 납품단가 연동제부터 조속히 제도화해 대자본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것이 하나의 출발점일 수 있다. 결국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개혁만이 모두를 위한 해법이 될 것이다. 약자에게 비용과 위험을 전가하는 수탈적이고 지대추구적인 경제구조하에서는 소상공인도 저임금 노동자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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