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칼럼] 인플레이션 대책은 있는가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인플레이션 즉 물가상승은 구매력을 갉아먹어 소득이 줄어든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정부가 세금을 걷어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세금(inflation tax)’이라는 말도 있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를수록 가만히 앉아서 더 가난해진다. 그런 일이 요즘 일어나고 있다. 이달 초 발표된 5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6%로 41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 8.6%)은 EU결성 이후, 영국(9.1%)은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선방한 한국(5.4%)도 오름세다.
인플레이션은 세 가지로 경로를 통해 발생한다. 하나는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때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가계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수요가 증가한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른다. 두번째로 제품의 생산비용이 증가하면 가격이 상승한다. 임금이 올라도 가격이 뛴다. 마지막으로 공급물량이 소진되거나 공급망이 무너져 공급이 부족할 때도 물가는 오른다.
코로나19는 공급망의 붕괴를 가져왔다. 팬데믹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국경봉쇄에 나서면서 촘촘히 짜여졌던 공급사슬에 균열이 생겼고 공급부족은 제품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의 조짐은 싹트고 있었다. 그런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천문학적으로 많은 돈이 추가로 풀렸다.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공급된 자금을 회수(양적 긴축)할 시기에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오히려 자금공급이 늘어난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라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을 따르면 늘어난 통화량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석유와 곡물 수출길의 차단은 이들 원자재 가격의 폭등 도미노를 유발했다. 공급 문제는 정부의 능력범위 밖에 있다.
공급난 해결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없다면 나머지 방법은 수요를 관리하는 것이다. 국가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대응책으로 금리 인상 카드를 사용해왔다. 금리를 올려서 소비욕구의 싹을 자르고 이를 통해 수요를 조절하는 것이다. 금리를 올리면 채무자들은 늘어난 이자로 잠 못 이루고 투자자들은 투자 의욕을 상실한다. 그리고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의 하락을 가져온다. 이는 가계나 기업을 심리적으로 빈곤 상태로 변화시켜 수요감소로 이어지게 만든다.
문제는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인플레이션 상황에 한국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화로 지구촌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인 상태에서 패권 국가인 미국의 금리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각국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국은 딜레마의 상황에 처했다. 이달 초 미 연준은 자이언트스텝(0.75%)으로 금리를 올렸다. 자이언트스텝 인상은 1994년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태라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의 금리와 미국 금리는 같은 수준(연 1.75%)이다. 미국은 하반기 금리를 연 3.4% 수준까지 급격하게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국 금리보다 미국 금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금리 역전이 나타나면 달러 자금의 해외유출이 우려된다. 이미 경험한 바 있다. 1997년 달러가 빠져나가 국가부도사태를 맞았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달러 유출이 이슈화된 적이 있다. 게다가 한국은 가계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난제는 또 있다. 미국은 금리 인상으로 소비를 둔화시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즉 경기침체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각오다. 미국의 소비위축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아시아 특히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목했다. 벌써 세계 경제는 성장이 위축되는 분위기다.
적어도 두 가지 할 일이 있다. 금리 역전 상황에 대비해 외화 즉 달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주요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 추진을 제고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이 넉넉하다고 자만해선 안 된다. 그리고 금리 인상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것으로 예견된 상황이다. 경기침체는 실업자를 양산한다. 실업대책으로 사회안전망 보완에 나서야 한다. 닥친 위기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