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도 이름도 모르는 스승

이건원 2022. 6. 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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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을 하고 귀가하는 길에 아이스크림보다 시원하고 달콤한 말 한마디가 우연히 내 귀를 스쳤다.

승용차가 한 건물 앞에 서더니 여인이 내렸다.

칠순 나이를 넘어 조금 전 젊은 남편의 말과 행동을 깊이 생각하니 종합병원인 아내에게 입이 백개 있어도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매정한 남편이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아내가 말리더라도 1개월 정도는 밀고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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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을 하고 귀가하는 길에 아이스크림보다 시원하고 달콤한 말 한마디가 우연히 내 귀를 스쳤다.

승용차가 한 건물 앞에 서더니 여인이 내렸다. 차를 운전한 기사가 급히 나와 뒷문을 열자 내리는 모습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로를 건너는 여인에게 남자는 “여보, 나는 당신 덕에 잘살고 있어. 오늘 수고해”하는 것 아닌가. 50대 중반쯤의 부부 같았다. 집까지 30분 이상 걸어오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 말 한마디가 크게 뉘우치게 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한 지 올해로 45년 차다. 가장으로서 힘들 때는 아내가 20년 정도 맞벌이도 했다. 그때 나는 아내가 차를 태워 달라고 하면, 30분 정도 거리이니 걸어가라고 했다.

한번도 “당신 덕에 잘살고 있다”고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겉으로라도 해 준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아내는 가정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는 봉건적 사고방식뿐이었다. 만일 오늘 본 남편처럼 공손히 말했다면, 아내는 용기백백 신명나게 직장 생활을 했을게다.

갑자기 죄스러운 생각이 든다. 아내가 여러 해 비염과 축농증으로 고생했다. 1주간 입원했을 때도 한번도 입원실에서 밤새워 보지 않았다. 칠순 나이를 넘어 조금 전 젊은 남편의 말과 행동을 깊이 생각하니 종합병원인 아내에게 입이 백개 있어도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매정한 남편이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바꾸려 한다. 첫단계로 매 끼니 쌀은 내가 씻어 안친다. 두번째는 침구를 내가 개어 이불장에 넣는다. 아내가 말리더라도 1개월 정도는 밀고 나가려 한다.

그 남성분 덕에 죽을 때까지도 몰랐을 충고를 스스로 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영원히 발송하지 못하는 편지를 쓴다. 그분이 이 신문을 읽는다면, 강릉 동계올림픽경기장 시계탑 인근 큰 건물 앞에서 지난 16일 아침에 있었던 일이라고 일러주면서 고맙다고 허리 굽혀 인사하고 싶다.

이름도 모르는 선생님의 말씀(여보 나는 당신 덕에 잘 살고 있어 오늘도 수고해)덕에 평생 들었어야 매정한 남편이라는 호칭을 면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운아인가.

이건원 노인심리상담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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