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과잉 욕망으로 불행해졌다면 고양이를 보라
인간 비극은 복잡함에서 비롯
너무나 많은 도구에 우왕좌왕
고양이는 뛰고 솟고 춤추면서
단순·친밀·평화의 세계로 인도
"동물은 놀고 인간은 노동한다"
삶이 힘겨울 땐 다운사이징을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너는 어디에서 여기로 왔는가? 너는 자주 먹고 오래 자며, 깨어 있을 땐 달리고 도약하며 춤춘다. 너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거실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네 모습에 우리는 감탄한다. 너의 질주 본능은 네가 사냥꾼의 후예라는 걸 보여준다. 너는 여기에 나타나고 곧 저기에서 나타난다. 너는 호기심으로 주변 사물을 탐색하고, 모든 사물에 말을 거는 듯하다.
문명 저 너머에서 온 너의 몸통도 두개골도 아주 작다. 우리는 그 귀엽고 작은 두개골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작은 너의 몸통을 안으면 따뜻한 체온과 함께 갈비뼈 아래에서 뛰는 심장 박동을 느낄 뿐이다. 너는 작은 만큼 그 몸통에서 내보내는 분뇨의 양도 소량이다. 너는 네 분뇨를 꼼꼼하게 모래로 덮어 냄새가 퍼지지 않게 처리한다.
우린 왜 피로를 자주 호소할까
네가 오기 전 우리는 다른 집에서 파양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 1년 동안 우리는 고양이 육아 경험을 쌓은 뒤 새로 아기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충남 예산에서 구조된 길고양이가 낳은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 중 하나다. 우리는 아기 고양이 입양처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를 만나러 갔다. 우리의 환대를 받고 들어온 너는 생후 두 달된 아기 고양이다. 본디 외래종인데 한국에 터 잡고 토종화하면서 코리안 숏 헤어라는 이름을 얻은 고양이의 후손이다. 겨우 몸무게 1킬로그램을 갓 넘긴 네 몸통을 감싼 짧은 털에 두드러진 무늬는 고등어를 닮았다. 너는 우리 집에 온 두 번째 고양이다.
종일 관찰해 보니 너의 활동량은 경이롭다. 너는 노동에 노예처럼 묶인 인간과는 다르다. 인간은 노동과 수고의 지속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이루며 자기 성과를 드러낸다. 그 노동은 땀을 흘려야 하는 고역이고, 노동에 따른 수고는 즐거움을 배제한다. 인간의 노동은 존재의 생기를 소진시킨다. 그래서 인간은 자주 피로하다고 부르짖는다.
너는 활발하게 움직이되 그 움직임으로 네 존재를 드러낸다. 너는 뇌 중추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바깥으로 표출한다. 인간의 생각함은 뇌 중추에 갇힌 운동성이다. 즉 인간의 생각이 외부 운동을 내면화한 것이라면 너의 운동은 곧 너의 생각함을 외부화한 것이다. 생각을 즉각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는 뛰어난 능력 때문에 너는 피로나 죽음을 모르고 존재의 고갈을 모른다. 너는 수고를 찢고 곧바로 솟구친다. 너는 자유이고 생명의 환희, 빛과 음악, 기쁨으로 빚은 천국 그 자체다.
4천년 전부터 이집트서 길러
불안이나 회의가 단 한 순간도 너를 사로잡을 수가 없다. 너는 놀이와 운동으로 빚은 신성한 긍정의 정수이고, 너는 욕망으로 퇴행하는 대신 늘 새로운 생성으로 나아간다. 오늘의 너는 어제와 달리 새롭다. 어제라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존재의 옷을 입기 때문이다. 너는 존재의 최고 높은 단계의 양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낸다.
철학자 니체는 어린아이를 가리켜 최상위 존재라고 말한다. 어린아이가 왜 최상위 존재가 되는 것일까?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신성한 긍정”(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성분으로 빚은 아기 고양이는 그 자체로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다. 거기에는 한 점의 거짓이나 의혹이 없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삼은 이들은 스스로를 집사라고 부른다. 인간 집사는 고양이를 소유하는 대신 고양이의 필요에 열심히 부응하며 그 수고를 보람으로 삼는다. 오늘날 반려동물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친밀감을 쌓으며 ‘가족의 아류’라는 직위를 얻는다. 야생 고양이는 인간에게 잠자리와 먹이를 얻고 자유와 대자연이라는 영역을 잃는다. 고양이 진화 연대표에 따르면 고양이는 4000년 전 이집트 가정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2500년 전 이집트는 고양이 반출을 막았지만 인도, 그리스, 극동 지역으로 흘러나갔고, 500년 뒤 로마 제국의 번창과 함께 세계 전역으로 퍼졌다.
오늘날 고양이는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종이다. 고양이는 인류 다음으로 지구 생태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생물 종이다. 우리와 사는 다정한 고양이 안에 길들지 않은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의 조상은 야생에서 왔다. 고양이 안에 숨은 또 다른 고양이, 바로 야생 고양이다. 이 야생 고양이는 예기치 않은 순간 아주 낯선 방식으로 돌연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짐승의 세계가 “침묵과 도약”(장 그르니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고양이가 도약하는 존재라는 건 맞다. 하지만 침묵이 의미 있는 음성신호가 부재한다는 뜻이라면 이 말은 부분적으로 그릇된 정보를 담고 있다. 고양이는 자주 울거나 야옹 소리를 내며, 종종 갸릉댄다. 고양이가 내는 소리는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알고 보면 고양이는 대단한 수다쟁이다.
너 역시 늘 무언가를 소리 내어 말하고, 노래한다. 인간 집사가 그 말을 주의 깊게 듣거나 알아듣지 못할 뿐이다. 창밖 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지저귈 때 고양이는 집요하게 새들을 응시하며 흥분해서 미친 듯이 빠른 소리를 낸다. 칫칫칫칫칫. 그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짹짹거리는 새소리와 닮았다. 이걸 채터링(chattering)이라고 한다. 우리 집 두 살 난 고양이가 창밖 나무에 와서 노니는 새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채터링을 했을 때 놀랍고 신기했다.
탐욕이란 이름의 또 다른 짐승
고양이는 대체로 평화스럽고, 다정하며, 행복한 모습이다. 먹고 놀고 사랑하라! 너는 단순함에 충직한 태도를 일관되게 따름으로써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의 불행이란 많은 경우 복잡함에서 비롯한다. 악마는 우리에게 ‘복잡하게, 더 복잡하게 살아라!’라고 속삭인다. 법을 자주 바꿔 복잡하게 꾸리는 것 등을 항상 경계하라.
우리는 불행을 피할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불행을 피할 기술로 인해 우왕좌왕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음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하려는 욕망의 과잉으로 불행의 덫에 빠진다. 마치 건강 정보 홍수 속에서 허우적이다가 병에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에서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정신적 도구를 갖고 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우리 안에 욕망이라는 짐승이 인간의 착함과 영리함을 다 집어삼킨다. 좋은 삶을 망치는 것은 탐욕과 분노, 이기주의, 그리고 추악한 욕망의 형해(形骸)들이다. 항상 심플한 게 더 좋다. 좋은 삶을 살려면, 부디 우리 안의 욕망을 덜어내고, 복잡한 인생을 자주 다운사이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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