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16년을 한결같이..새에덴교회 참전용사 보은행사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2. 6.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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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새에덴교회가 처음 개최한 참전용사 보은행사. 오른쪽 사진 앞줄 가운데는 이 행사의 첫 인연을 맺어준 래리 레딕씨. /새에덴교회 제공

“코리아? 나의 삼촌도 한국전에 참전했지. 브라더!”

지난 2010년 터키 남부 도시 안타키아. 강가의 벤치에 앉아있는 저와 동료 기자에게 터키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고는 ‘코리아’라는 답을 듣더니 대뜸 “브라더”라고 외쳤습니다. 금세 아저씨 주변에 여러 사람이 모이더니 너도나도 친척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며 친근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광림교회가 이곳에 설립한 안디옥개신교회 10주년을 맞아 동행취재하던 중이었지요. 생면부지 아저씨들의 반응을 보면서 터키인들이 한국을 형제 나라로 여긴다는 뜨거운 체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광림교회는 터키 참전용사 70여명을 초대해 위로행사도 열었지요.

종교 취재를 하면서 해외의 6·25참전용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서울광염교회와 명성교회가 마련한 참전용사 위로행사도 각각 취재했습니다. 터키든 에티오피아든 참전용사 노병들은 군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대한민국이 발전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했습니다. “내가 싸운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도 했지요. ‘아리랑’은 거의 모두 기억하고 있더군요. 그들의 “잘 발전해줘서 고맙다”는 말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7년 새에덴교회는 미국 휴스턴에서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개최했다. 소강석 담임목사가 노병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에덴교회 제공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님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2007년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 전야제에 참가했다가 한 참전용사를 만난 것이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레리 레딕이라는 그 흑인 노병은 상의를 걷어올려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줬다지요. 그는 “동두천, 의정부, 평택”의 지명을 대면서 “전쟁 이후 한국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답니다. 소 목사는 그 자리에서 길바닥에 넙죽 큰절을 올렸답니다. 전북 남원 지리산 산골에서 자란 소 목사는 스스로 ‘촌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목회자이지요. 액션(?)이 크고 실행력이 강한 소 목사답게 당장 그해부터 해외 참전용사를 한국으로 초청해 보은(報恩) 행사를 열었습니다. 올해도 지난 6월 19일 어김없이 16회째 보은 행사를 열었지요.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초청받은 참전용사들은 임진각, 판문점, 전쟁기념관, 평택 2함대 등과 한국의 발전상을 둘러보고 교회에서 만찬을 함께하며 70년 전을 회상하곤 하지요.

새에덴교회 초청으로 2011년 국립현충원을 찾은 참전용사들. 앞줄 흰색 제복을 입은 사람은 예비역 해군 제독인 김종대 장로. 김 장로는 참전용사 보은행사 준비위원장을 16년 동안 맡아왔다. /새에덴교회 제공

처음 새에덴교회가 보은 행사를 열 때는 “몇 해 하다 말겠지”라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국가기관도 아닌 민간 그것도 개별 교회가 참전용사들을 매년 초청해 보은행사를 연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청된 노병들의 왕복 항공료와 숙식 등 체재비용을 모두 교회가 부담했습니다. 1회성 행사가 아닌 연례행사를 여는 것은 대형교회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소 목사는 스스로 말하는 ‘촌티’ 혹은 뚝심을 보란 듯이 발휘했습니다. 처음 미국 참전용사로 시작해 영국, 태국, 캐나다, 터키, 콜롬비아, 필리핀, 호주의 참전용사를 계속 초청했습니다. 참전용사가 많은 미국의 경우엔 현지로 찾아가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흥남철수의 주역 등 16년 동안 연인원 5000여명이 국내외 보은 행사에 초대됐습니다.

2012년 새에덴교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필리핀 참전용사들이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당시 이자스민 의원의 설명으로 한국의 발전상을 담은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순조롭게 이어지던 행사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복병을 만나 멈출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새에덴교회는 IT기술을 이용해 팬데믹 파고(波高)를 넘었지요. 2020년 행사는 당초 미국을 찾아 퇴역 항공모함 위에서 대대적으로 개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이 덮치자 교회는 줌(ZOOM) 기술을 이용해 온라인 화면으로 미국과 캐나다, 태국, 필리핀 4개국 참전용사와 유족을 초대했습니다. 지금은 줌 화상회의에 많이 익숙해졌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줌으로 시간대도 다른 미주(美洲·미국, 캐나다)와 동남아시아(태국, 필리핀)를 연결해 한국에서 생중계하는 행사를 동시에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드디어 행사 당일 새에덴교회 예배당의 바둑판처럼 작은 사각형으로 나뉜 대형화면에 4개국 참전용사들이 등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은 감격스러웠습니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메타버스와 딥페이크 기술까지 응용해 참전용사들이 70년 전 청년 모습으로 인사하는 장면도 연출했습니다. 이런 기술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새에덴교회를 비롯한 개신교계의 온라인 예배에도 활용됐습니다.

2015년 새에덴교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참전용사들이 판문점을 방문했다. /오종찬 기자

참전용사 초청행사엔 북한도 반응을 했다지요. 소 목사는 지난 2011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위원장 강영섭으로부터 “우리와 싸우자는 거냐?”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참전용사 초청 보은행사를 두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겁니다.

비단 북한의 반응뿐 아니라 정권의 향배와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국내에서 열리는 6·25 보훈행사와 한미동맹을 기념하는 행사도 분위기가 달라지곤 했지요. 그렇지만 16년간 새에덴교회의 보은 행사는 변함 없이 계속됐습니다.

16회를 이어오는 동안 참전용사 보은 행사는 새에덴교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습니다. 미군 참전용사가 참석할 때에는 아들 부시와 오바마, 트럼프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오기도 했지요. 이 교회의 청년·청소년 신자들은 영어 자원봉사로 참전용사의 일정을 일일이 챙겼습니다. 미래 세대에 대한 호국보훈 교육은 저절로 이뤄졌지요.

코로나 와중이던 2021년 새에덴교회 참전용사 초청 보은행사는 온라인으로 열렸다. 화면으로 참석한 노병들과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는 새에덴교회 교인들. /장련성 기자

점차 참전용사들은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평균 연령이 90대 초반입니다. 교회는 초청 대상을 참전용사 본인뿐 아니라 실종자와 전사자 유족까지 넓히는 등 변화에 발맞추고 있습니다. 소강석 목사는 “한일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리 교회 보은행사에 참석했던 미국 참전용사를 중심으로 ‘독도는 우리가 싸워 지킨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서한을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등 적극 나섰던 일이 기억난다”며 “앞으로도 ‘찾아가는 보은 행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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