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77] 러시아 디폴트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 1온스=35 미 달러화”의 약속을 깰 때 어느 나라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미국이 설계했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해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뻔뻔함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볼셰비키 혁명 직후인 1918년 2월 소련 정부는 34억파운드에 이르는 제정러시아의 부채를 일방적으로 무효화했다.
러시아는 80년 뒤인 1998년에도 외채 상환 불능(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한 뒤 당선된 초대 대통령 옐친은 시장 개방과 국영기업 민영화를 약속하면서 많은 외채를 들여왔다. 하지만 관료들이 부패한 데다가 대통령의 건강도 좋지 않았다. 거기에 아시아 외환 위기까지 터졌다. 보유 외환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결국 옐친은 모라토리엄 선언과 함께 통치력을 상실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그때 권력을 넘겨받은 푸틴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을 세계 9위로 올려놨다. 그러니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상환 능력을 잃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방세계는 푸틴이 옐친의 길을 걸으며 제발 실각하기를 바란다. 러시아로 송금하는 것은 차단하고 빚은 제때 갚으라고 독촉한다. 푸틴 정권의 붕괴를 향한 일종의 기우제다.
1918년 소비에트 정부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 소비에트 외채의 80%는 프랑스 정부가 갖고 있었다. 차관을 통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을 지원한 결과다. 그러나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때는 서방 민간 금융기관들이 러시아 채권을 골고루 나눠 갖고 있었다. 그래서 뱅커스트러스트, 바클레이즈, 시티 등 유수 금융기관들이 큰 손해를 보았다. 미국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파산했다.
마침내 러시아가 외화 표시 국채를 갚지 못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금 서방세계는 신이 났지만, 웃을 일만은 아니다.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것은 아닌지도 점검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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