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금 인상 자제" 요청한 부총리, 최저임금 누르기 아닌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조찬 간담회에서 “임금 인상의 자제”를 요청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대립 중인 상황에서 추 부총리의 이런 발언은 부적절하다. 정부가 사용자 편을 들면서 최저임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추 부총리의 이날 발언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추 부총리는 이날 “과도한 임금 인상은 고물가 상황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해 중소기업, 근로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도 키우고, 결국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며 “고임금 현상이 확산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물가안정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고 했다. 물가와 임금 상승의 악순환인 ‘임금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정부의 물가 관리 책임을 피하면서 인플레이션 책임을 노동자, 임금 인상에 전가하려는 인식이 엿보인다. 물가 상승은 실질소득의 감소로 그 충격은 저소득층이 주로 받는다. 특히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들에게는 물가 상승률에 따른 최저임금 인상은 당연한 일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대기업 노동자 임금을 깎기보다 납품단가연동제 등 경제구조의 개선을 통해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을 올려 해소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이날 최저임금 요구안 수정안에서 경영계는 4%대 물가 상승률에 한참 못 미치는 1.1% 인상안(9260원)을 내놨다. 노동계 수정안인 12.9% 인상안(1만340원)과도 간극이 크다. 이런 때에 추 부총리의 발언은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경영계) 위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됐다. 재계가 ‘임금 인플레이션’을 핑계로 벌이는 최저임금 동결 주장에 정부가 동의한 것처럼 비치는 게 사실이다. 최저임금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훼손됐다. 가뜩이나 정부가 법인세 인하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 친기업 정책을 내놓아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던 터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추 부총리 발언에 대해 “노사 자율권 침해” “구조적 모순을 임금에 돌리는 처사” 등으로 비판한 것은 당연하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저임금 노동자 등 취약계층은 생존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마저 우려되는 복합위기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경영자들뿐 아니라 노동계와 취약계층이 살아나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각별히 새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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