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강은 겸손·나눔·포용·여유로움 담긴 그 무엇이죠"

박임근 입력 2022. 6. 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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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00리 섬진강은 버려라. 그리고 바다의 시원(처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를 버린 물방울은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으로 거듭나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사상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한들 송만규(67) 한국화가가 섬진강의 사계절을 32장의 대형 화폭으로 담아낸 그림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얹은 글을 책으로 펴냈다.

봄·여름·가을·겨울 철마다 다른 섬진강의 풍광을 수묵화로 그리고, 자신이 심취한 묵자의 겸애사상 등을 입혀 글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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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수묵화 수상집 펴낸 '섬진강 화가' 송만규 작가
송만규 화가가 자신의 수묵화 수상집 ‘강의 사상, 다시 붓질·겸애의 순간들-섬진팔경’에 실린 대작을 펼쳐 보이고 있다. 박임근 기자

“이제 600리 섬진강은 버려라. 그리고 바다의 시원(처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를 버린 물방울은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으로 거듭나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사상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한들 송만규(67) 한국화가가 섬진강의 사계절을 32장의 대형 화폭으로 담아낸 그림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얹은 글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강의 사상, 다시 붓질·겸애의 순간들-섬진팔경>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철마다 다른 섬진강의 풍광을 수묵화로 그리고, 자신이 심취한 묵자의 겸애사상 등을 입혀 글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말한 ‘강의 사상’은 무엇인지 궁금해 지난 24일 그를 만났다.

‘강의 사상, 다시 붓질·겸애의 순간들…’
섬진강 사계절 대형화폭 32장에
묵자 겸애사상 ‘대동세상’ 녹여

20대 민주화운동 나서 민중미술 활동
50대 ‘묵자 대중화’ 기세춘 선생 만나
2018년 한국묵자연구회 회장

2015년에 그린 섬진강 구담의 여름 풍광. 송만규 화가 제공
2016년에 그린 섬진강 소나무숲의 겨울 전경. 송만규 화가 제공

“강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 흐르면서 주변에 도움을 주는 나눔정신, 물줄기 하나씩이 어느 것과 다툼없이 만나는 포용과 대의, 장애물로 막혀 있으면 우두커니 머물지 않고 돌아가는 여유로움의 지혜를 합한 그 무엇입니다.”

격동의 1970~80년대 민중미술가로 살아온 그는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민미련) 의장,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전북지회장 등을 지냈다. 1993년 문민정부 이후 놓았던 붓을 다시 잡았다. 2002년부터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섬진강 주변에 작업실 마련하고 강에 집중했다.

‘섬진강에 애정이 생겼고 600리 섬진강 물길을 화폭에 담고 싶은 욕심도 꿈틀거렸다. 직선이 아닌 강의 자유로운 곡선, 둥글둥글한 바위에다 그 사이사이를 채운 억새, 잠시 쉬어가는 두루미와 같은 새들의 휴식처가 좋았다. 새벽녘의 고요 속에서 안개의 자유로운 이동과 구름의 흐름 등 일출 전후의 신비한 모습이 화가의 시선을 유혹했다. 그는 주로 새벽에 작품을 그린다. 그 시간대는 오롯이 자연을 소유할 수 있고, 주변의 간섭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2005년 섬진강 장구목의 여름을 그린 ‘새벽강’. 길이 21m의 대작이다. 송만규 화가 제공

특히 작품 <새벽강>과 <언강>의 소재가 된 장구목은 그가 애착하는 곳이다. 2005년 장구목의 여름을 길이 21m짜리 ‘새벽강’으로 완성했고, 그해 장구목의 겨울을 24m짜리 ‘언강’에 담았다. ‘언강’은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눈덮힌 강변의 흰색과 강물의 깊은 물색깔 대비가 인상적이다. 대형 화폭은 한지 20장 가량을 이어붙여서 만들었다.

그는 지천명인 50대에 들면서 삶을 반추하게 됐다. “겸손을 떠는 게 아니라 앞으로 세상살이를 잘 할 자신은 없지만, 전보다 못된 짓은 안 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단다. 그즈음 인문학 고전을 생각했고, 중국 고대 사상가인 묵자 사상의 대중화에 힘써온 묵점 기세춘 한학자(1937~2022)를 만났다. 2010년 한국묵자연구회 창립에 동참해 2018년부터 회장도 맡고 있다.

“계단식 논에서 맺힌 한방울의 물이 논두렁 사이로 흘러 조그만 물줄기가 되는 것을 보았어요. 물줄기는 아래로 내려가며 도랑을 이루고 강물이 되고 계곡이 됩니다. 이걸 보면서 이게 바로 ‘묵자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자 사상의 핵심인 겸애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대동사회’를 말합니다.”

그는 섬진강을 폭넓게 제대로 보기 위해 왕시루봉 등 지리산에도 올랐다. 마치 새가 공중에서 땅을 한눈에 내려다보듯 부감법을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의 강에 대한 인식의 폭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북을 관통해 새만금으로 흐르는 만경강을 화폭에 담아 전시회를 열었다. 임진강·한탄강·두만강과 중국 해란강 등도 마음에 두고 있다.

“섬진강 화가라는 이름이 좋기도 하지만 민망하기도 합니다. 수줍은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강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의 사상’으로 표현한 강의 덕목을 화가적 능력으로 아름답게 담아서 각박한 세태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기를 바랍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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