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위한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지만 남을 위해 흘린 눈물은 가장 아름다워"

김용출 2022. 6.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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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시무식을 마친 지난 1월 3일 오전 11시쯤,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휴대폰을 통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전 장관은 책 서문에서 "스스로 생각해온 88년, 병상에 누워 내게 마지막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다. '디지로그' '생명자본'에 이은 그것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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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어령 마지막 육필원고 공개
2년여간 쓴 시·수필 110편 모아
타이핑 거쳐 '눈물 한 방울' 출간
직접 그린 그림들은 그대로 실어
"노트 보면 그의 고통 모두 보여"
“오후에 만날 시간이 되겠는가?”

새해 시무식을 마친 지난 1월 3일 오전 11시쯤,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휴대폰을 통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날 오후 2시, 고 대표는 이 전 장관이 사는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을 찾았다. 2017년 간암 판정 이후 항암 치료를 받아온 이 전 장관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고 대표가 다가가자, 이 전 장관은 192페이지 분량의 두툼한 군청색 양장본 노트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 노트는 나만 보려고 만든 것이네. 여기 그림도 내가 보려고 그린 건데, 색연필을 사다 주길래 사용해서 그린 것이지. 이 노트를 내가 주고 갈 테니까, 책으로 잘 만들어 보시게. 그림도 재미난 것들 몇 개를 본문에 써보게.”

이 전 장관의 노트에는 그가 2019년 10월24일 새벽부터 2년여 작성해온 수필과 시, 그림 등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노트는 이후 1월23일까지 추가로 쓰였다. 이 전 장관이 지난 2월26일 작고하면서 노트 192쪽 가운데 21쪽은 끝내 채워지지 못해 여백으로 남았다.

컴퓨터로 왕성하게 집필을 해온 이 전 장관은 건강이 악화하면서 마지막 순간에는 육필 원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전 장관의 배우자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고인은 마우스의) 더블클릭이 안 돼 컴퓨터로 집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컴퓨터의 전자파가 몸에 느껴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쓴 것이 바로 노트였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노트를 쓰면서 “컴퓨터로 글을 못 쓰니 찹쌀떡 장수 목소리, 문풍지 소리 등 옛 기억이 비로소 돌아온다”고 말했다고, 강 관장은 전했다.
지난 2월 타계한 이어령 전 장관이 2019년 10월부터 2년여 병상에서 쓴 미공개 육필원고를 모은 책 ‘눈물 한 방울’이 출간됐다. 허정호 선임기자
지난 2월 타계한 이 전 장관이 병상에서 노트에 쓴 미공개 시와 수필 147편 가운데 110편을 모은 책 ‘눈물 한 방울’(김영사)이 출간됐다. 책은 고인이 쓴 육필 원고를 타이핑해 순서대로 텍스트로 옮겼고, 중간 중간 그린 그림은 그대로 실었다.

이 전 장관은 책 서문에서 “스스로 생각해온 88년, 병상에 누워 내게 마지막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다. ‘디지로그’ ‘생명자본’에 이은 그것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린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며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관장은 2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장관이) 일찍부터 컴퓨터를 쓰셨기 때문에 육필원고가 많지 않다”며 “인쇄된 원고가 아닌 육필원고는 표정을 갖고 있다. 노트를 보면 그의 아픔, 외로움, 고통이 모두 보인다”고 말했다.

강 관장은 이날 병상 중 이 전 장관이 두 차례 크게 운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즉 그는 더 이상 걷지 못한 순간이 다가오자 “내가 못 걷게 될 것 같아”라고 말하며 크게 울었고, 다시 섬망 증상이 와서 정신이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던 순간에 크게 울었다고 전했다.

강 관장은 “(고인이) 글을 쓰는데 지장이 되니 항암치료를 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며 “마지막에 남은 생이 얼마 없는데, 이건 내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고 했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내버려두라고 해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유족 측은 이번에 책에 포함되지 않은 37편의 글을 비롯해 이 전 장관이 남긴 각종 글들을 묶어 따로 책을 내는 한편, 내년 2월 이 전 장관의 1주기 때에는 영인문학관 서재도 외부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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