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눈부신 이름의 죽음

한겨레 2022. 6. 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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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 대교당에서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김지하 시인 49재를 맞아 문화제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펼쳤다. 독재시대에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에서 시인은 민주주의라는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여전히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쇠퇴, 종언, 변질, 위기를 말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그처럼 어떤 위협으로부터 구원해야 할 눈부신 이름처럼 간주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의 약점과 위험을 돌아보는 성찰적 민주주의를 저해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선하고 아름답고 정의로운 것의 총칭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역설과 이율배반을 안고 있고, 종종 민주주의의 적을 함께 배태한다.

민주화 직후 한국 민주주의의 생존을 위해 긴급했던 몇가지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첫째,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독재를 부활시키려는 기도를 막을 것. 둘째, 독재의 조직적 기반이던 군부와 정보기관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할 것. 셋째, 선거를 통해 독재세력의 지배체제가 연장되지 않도록 정치경쟁을 활성화하고 유권자의 힘을 키울 것.

그것은 독재로의 회귀를 막는다는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한 핵심 과제들이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첫번째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문민통제, 선거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열렬히 추구했다. 군부를 법치로 통제하고, 국민의 선택으로 권력을 정하며, 시민참여로 민주주의를 생기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검찰권력의 비대화, 선출된 권력의 남용, 정치참여의 과열 같은 또 다른 위험이 크고 있었다. 이 새로운 현실은 민주주의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질문을 제기했다. 선거의 승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있지 않는가? 선출되지 않은 커튼 뒤의 권력이 있진 않은가? 권력의 과오를 다른 권력으로 문책할 수 있는가?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방향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2016~17년 촛불집회,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탄핵과 수감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무엇보다도 권력남용, 정경유착, 비선정치,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국민과 법이 심판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위험들이 커졌다. 검찰의 정치적 성장, 시민 행동주의의 보편화, 대결정치와 정치양극화 심화 같은 문제가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었으나 오히려 그것을 심화시켰다. 적폐청산의 정치에 검찰을 활용했고, 검찰개혁에는 선출된 권력을 내세웠으며, 선출된 권력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과 지지층의 동맹을 구축했다. 오래된 민주주의의 적과 싸우고자 했지만, 그 자신이 새로운 위험의 일부이자 원인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윤석열 시대의 민주주의를 지금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향한 고민과 의지는 감지할 수 없다. 오히려 탄핵 이전의 문제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정치적 상상력까지 함께 퇴행할 위험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때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외치는 소리가 그토록 크더니 지금은 정치가 검찰로 다 채워져, 선출된 권력과 비선출 권력의 경계가 소멸했다. 또한 야당, 경찰, 노동계, 시민사회, 청년, 여성, 지방 등 권력의 주변부들이 배제되거나 통제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 정치의 오랜 문제들인 권력집중, 관료적 합리성 맹신, 기득권 중심 헤게모니 정치가 귀환하고 있다.

사회에서도 민주주의를 허무는 힘들이 커갈 것을 우려한다. 온라인상에 민주화, 좌파, 전라도, 여성,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 복지 수혜자에 대한 혐오가 넓게 퍼져 있다. 카카오톡과 유튜브로 연결된 거대한 극우 사이버 공동체, 극단적 가짜뉴스가 돌아다니는 탈진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이들이 모두 ‘민주적으로’ 여론을 형성한다.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부를 수 있는 눈부신 이름은 죽었다. 국민, 참여, 여론, 주권, 자유, 법치 등 본질적 요소들의 의미를 되묻고 민주주의를 다시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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