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가짜 5·18'

정대하 2022. 6. 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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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전국 프리즘] 정대하 | 호남제주데스크

광주가 또다시 조롱의 대상이 됐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의 발언 때문이다. 홍 당선자는 지난 21일 지상파 방송 토론회에서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자에게 ‘제가 광주시장이라면 5·18 유공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겠다. 자랑스러운 사람들을 왜 공개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홍 당선자는 2019년 2월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유공자에 대한 특혜를 3대까지 받는다는 자랑스러운 5·18 유공자를 국민 앞에 당당히 공개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의아하다’고 밝힌 바 있다. 얼핏 들으면 5·18을 ‘추앙’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5·18 유족들과 생존자에겐 상처를 덧나게 하는 ‘2차 가해’다.

우선, 5·18 사망자·부상자는 6·25 참전용사나 4·19 유공자 등과 달리 국가유공자법에 따른 국가유공자가 아니다. 5·18예우법에 따른 5·18 민주유공자여서 보훈급여를 따로 받지 않는다. 또 현행법에선 5·18 유공자 명단만 따로 공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8월 12월 일부 시민이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낸 ‘5·18 유공자 명단 및 공적 내용 공개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명단 공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독립유공자의 경우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에 따라 명단을 누리집 등에 공개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여야가 논의해 관련 법을 고쳐 5·18 유공자뿐 아니라 모든 국가유공자 등의 명단을 공개하면 될 일이다.

광주시 서구 5·18기념재단 인근 5·18 현황조각공원 지하 추모승화공간엔 벽면에 유공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정대하 기자

그래도 어떻게든 5·18 유공자 명단을 보고 싶다면, 광주 5·18기념공원을 방문하길 권한다. 5·18 현황조각공원 지하 추모승화공간 벽면에 유공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홍 당선자가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5·18 민주화운동 관련 보상자(5807명·2018년 5월 기준) 중에 ‘가짜 5·18 유공자’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어서라면, 에둘러 돌아갈 필요 없다. 가짜 5·18 유공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지목해 여야 합의로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서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그날, 5·18 기념식에 참석한 여야 정치인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러 두루 공감을 얻었다. 2019년 5·18 민주화운동을 헐뜯는 세미나를 국회에서 주최했던 이력 때문에 지사 후보 공천에서 배제됐던 김진태 강원지사 당선자는 공개적으로 ‘과거’를 사죄한 뒤 가까스로 당내 경선을 통과했다. 5·18 딜레마에 갇혀 있던 국민의힘이 변화의 실마리를 보인 점은 긍정적이다.

광주시 서구 5·18기념공원 안 5·18 현황 조각상. 정대하 기자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것은 국민의힘의 대선 공약이다. 어쩌면 이번 국민의힘 집권기가 5·18을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려면 적어도 두가지가 이뤄져야 한다. 먼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5·18 진상조사 보고서를 펴낼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민의힘이 앞으로 5·18을 왜곡·폄훼한 정치인, 수구세력과 과감하게 결별해 5·18을 보는 기본 출발선을 멀찌감치 잡는 것이다. 그래야 광주도 온전하게 마음을 열 수 있다.

광주엔 아직도 오월의 아픔을 겪는 이들이 많다. 수십년째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오월 성폭력 생존자, 고문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는 시민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기동타격대원 등에게 오월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오월의 자긍심으로 살아온 광주시민들은 5·18단체 내부 이전투구나 일부 5·18 유공자들의 일탈행위에 혀를 끌끌 차다가도, 5·18 북한군 개입설 등 황당한 주장에 분노하며 심리적 상처를 입고 있다. 오월을 추앙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 광주도 이젠 ‘해방일지’를 쓰고 싶다.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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