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여성' 장벽 넘은 지휘자 김은선..11년 만에 고국 무대 '금의환향'

김소연 2022. 6. 28. 17: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월 21, 22일 서울시향과 드보르자크 연주
SFO 첫 여성 상임 감독 돼 
뉴욕 메트 성공적 데뷔 후 내년 라 스칼라 데뷔 
"후배 음악가들 자신에 대한 믿음 갖길"
지휘자 김은선. ⓒKimTae-hwan

'오페라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지휘자 김은선(42)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지만 정작 김은선은 '최초의 여성' 또는 '최초의 아시아인'이라는 수식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세계 정상급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은선이 내달 21, 22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11년 만에 고국 무대에 오른다. 28일 한국 기자들과 화상(줌·Zoom)으로 만난 그는 "기자님들을 리허설 현장에 꼭 초대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며 "리허설·연주 때는 내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게 전혀 화제가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김은선은 연세대 음대에서 작곡을,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한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 재학 중이던 2008년 스페인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8월 SFO 음악감독으로 취임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메트), 시카고 리릭오페라 등 미 최정상 오페라 극장에서 잇달아 성공적 데뷔 무대를 가졌다. 지난해 말 NYT가 선정한 '문화계 샛별'에도 이름을 올렸다.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는 그는 여성으로서, 또는 아시아계로서 느끼는 장벽을 묻는 질문에 "음악계 밖에서는 화제가 되는 주제일지 모르겠지만 음악가들과 일하는 동안은 내가 아시아계 여성으로 비친다는 사실조차 잊곤 한다"고 답했다. 그는 "은퇴를 앞둔 여성 비올라 연주자가 '여자 화장실에서 지휘자와 마주칠 줄은 평생 생각도 못했다'고도 하고, 젊은 세대로부터 내 존재 자체가 영감이 된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며 "사회적 변화에 내가 보탬이 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기쁘다"고 덧붙였다.

김은선 지휘자의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지휘 모습.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제공

김은선의 마지막 한국 무대는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였다. 베이스 연광철과 TIMF(통영국제음악재단) 앙상블의 무대를 이끌었다.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에서 달라진 위상과 함께 금의환향하는 그가 선택한 레퍼토리는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다. 체코어까지 배우면서 드보르자크를 공부한 그는 "언젠가 한국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면 드보르자크를 들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슬라빅 문화가 한국 정서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음악감독 취임 전인 2019년 SFO 데뷔작도 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였다.

그는 유럽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내년에는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에도 데뷔한다. 연세대 재학 중 학내 공연으로 지휘와 인연을 맺게 한 작품이자, 메트 데뷔작인 '라 보엠'을 지휘한다. 아시아계 음악가로서 드물게 유럽과 북미의 주요 오페라 극장를 두루 누비고 있는 그는 "기회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예술가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 SFO는 러시아 음악가들에게도 충분한 기회를 열어둘 계획이다. 김은선은 "예술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으로 서야 한다"며 "인종·국적·성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8일 김은선 미국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음악감독이 한국 기자들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줌 캡처

김은선에게는 어떤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느냐보다 자신이 어떤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특별히 더 서 보고 싶은 무대에 대한 동경은 없지만 SFO와 함께 한국을 찾을 날은 고대하고 있다. 그는 "K팝을 통해 한국 문화의 관심이 높아져 음악감독 취임 후 오히려 오페라단 관계자들이 한국행을 더 크게 꿈꾸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은선은 작곡가의 꿈도 언젠가 다시 펼치고 싶다. 그는 "작곡에서 지휘로 전공을 바꿀 때 '왜'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었지만 그 선택으로 지금의 내가 됐듯 후배 음악가들도 길게 보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휘자 김은선. ⓒKimTae-hwan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