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중독 질병자 피해 여전한데..중대재해 사건 적용 검찰수사 의미는

유선희 기자 2022. 6. 28. 16: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4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산재참사 2주기 및 산재사망 건설노동자 추모 행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2월 경남 김해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대흥알앤티 사업장의 쇼트처리 공정에서 세척 일을 하다 유독물질 트리클로로메탄에 중독되는 피해를 본 강지훈씨(가명·30)는 여전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지 4개월이 넘었는데도 온몸에 난 두드러기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모낭염’ 진단을 받았다. 세균감염이나 화학·물리적 자극에 의해 모낭(털구멍)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병원은 ‘직업적 노출에 의한 모낭염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간 약을 먹느라 피부과 약도 먹지 못한 강씨는 최근에서야 약 치료 중이라고 했다. 경제활동도 못하고 있다는 강씨는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억울했다”고 28일 말했다. 창원지검은 지난 27일 13명의 직업성 질병자가 발생한 대흥알앤티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는 무혐의 처분을 하고, 대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강씨는 “제 몸은 이렇게 됐는데 책임자는 제대로 처벌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다만 검찰은 대흥알앤티 사건 외에 같은 유독물질 트리클로로메탄에 중독돼 16명의 직업성 질병자가 발생한 경남 창원시 소재 에어컨 부속자재 제조업체 두성산업에는 중대재해법을 적용했다. 검찰은 두성산업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검찰의 첫 기소 사건이다.

검찰은 두성산업에 대해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다”면서 “최소한의 보건조치인 국소배기 장치도 설치하지 않아 근로자들이 독성간염에 이르게 된 사실이 인정됐다”고 했다. 반면 대흥알앤티는 “법률이 정한 절차와 내용대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준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검찰의 수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실질적인 ‘이행’보다는 ‘구축’에만 방점이 찍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급성 간 중독 피해를 본 강지훈씨(가명.30)가 여전히 온몸에 두드러기로 고생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강씨 팔, 어깨) 강씨 제공

중대재해법은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뿐만 아니라 그 이행에 관한 조치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전문가네트워크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의무만을 준수하면 중대재해법 위반이 아닌 것처럼 기준을 정한 검찰의 판단은 모법이 가지는 ‘이행에 관한 조치’까지 포함하는 의무 범위를 축소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다만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루어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규정한다. 중대재해법이 올해 1월27일 시행돼 아직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법을 온전히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는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법 후퇴 기조가 검찰 수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우려한다. 정부는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병훈 경남본부 민주노총 국장은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재해법으로 기소해도 검찰에서 깔아뭉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중대재해법 시행 전부터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사실상 마련돼 있다. 그런데도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 놓고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번 수사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돼 기업들이 형식적인 안전보건체계만 갖추게 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했다.

‘중대재해법 적용 1호’ 사건인 삼표산업에 대한 검찰수사가 더딘 것 역시 ‘정부 눈치보기’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민주노총과 노동시민사회는 오는 29일 ‘삼표 최고책임자 구속기소 및 엄정 처벌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연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을 개악하고 무력화 시도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이번 대흥알앤티 수사에서 보듯 중대재해법의 자의적으로 해석해 법 의미를 축소하는 검찰도 규탄하겠다“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