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줄게" 약속 어긴 인간들..수원청개구리 '헌 집'만 사라졌다

[현장] 수도권 제2순환도로 공사현장 가보니
수원청개구리 대체서식지 1m높이 성토
도로공사쪽 "사유지라 막을 방법 없어"
환경단체, 농지 매입·농민 지원책 요구
"포획·이주 대체서식지 정책 재검토해야"

경기 김포시 하성면 석탄리 들판에서 발견된 수원청개구리. 파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예정지에 살던 수원청개구리,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종이 대체서식지로 포획·이주됐으나 방사된 논과 농수로가 양서류가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부 대체서식지는 땅주인에게 통보 없이 무단 방사해 항의를 받는 등 멸종위기종 보전 정책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고유종인 수원청개구리는 2012년 환경부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됐지만 보호구역 지정이나, 대체서식지 소유주에 대한 보상·지원책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 김포시 하성면 석탄리의 수원청개구리·금개구리의 대체서식지를 가보니, 애초 논이었던 4만여㎡에 외지에서 실어온 흙이 1m 높이로 성토되어 있었다. 인근 농경지에는 흙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과 대형 굴착기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성면 석탄리 일대 논에는 지난해 38차례에 걸쳐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1~2공구 대상지에서 살던 수원청개구리 2561마리와 금개구리 6852마리를 포획해 이주시킨 바 있다. 수원청개구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 금개구리는 멸종위기종 2급이다.

지난해 수원청개구리·금개구리 대체서식지로 지정된 경기 김포시 하성면 일대 논 4만여㎡가 올해 들어 1m가량 높이로 성토됐다. 박경만 기자

현장을 안내한 파주환경운동연합 이정철 운영위원장과 노현기 전 공동의장은 “이미 예견됐던 상황”이라며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탄식했다. 환경단체는 2019~2020년 한국도로공사, 포획·이주업체 등이 참여한 수도권 제2순환로 노선의 멸종위기종 대체서식지 협의 과정에서 “멸종위기종이 이주할 논과 수로부터 확보해야 하며, 반드시 국공유지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국공유지가 마땅치 않을 경우, 사유지를 매입하거나 농민 또는 토지 소유주에게 임대료를 지급해 이행 사항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업자인 한국도로공사는 ‘예산이 없고 사업 지연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결국 금개구리는 농어촌공사가 소유·관리하는 자연형 농수로에, 넓은 논에 사는 수원청개구리는 포획한 뒤 인근 논에 방사하기로 하고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포획·이주 허가를 받았다.

도로공사의 의뢰를 받아 멸종위기 양서류 포획·이주 작업을 진행한 아시아태평양양서파충류연구소 김종범 박사는 “대체서식지인 논 일부가 성토되었는데 사유지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 성토 작업 전 양서류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개체수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일대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예정지의 지난해 멸종위기종 포획·방사 현황. 파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파주시 송촌동 구간에서는 논 주인이 나중에야 대체서식지로 지정된 것을 알게 돼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또 대체서식지인 자연형 수로가 최근 콘크리트 수로로 바뀐 곳도 있었다고 파주환경운동연합은 전했다. 이정철 운영위원장은 “이 도로가 가로지르는 파주시 송촌동, 탄현면, 월롱면 일대 농경지는 수원청개구리와 금개구리가 폭넓게 서식하는 지역인데, 잇단 대체서식지 훼손으로 개체수 급감이 우려된다. 이렇게 할 거면 이주는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현장 확인한 뒤 서식환경이 바뀌었다고 판단되면 추가 대체서식지 확보 등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김포~파주 구간(25.45㎞)은 애초 한강하구습지보호지역 통과 구간에 교량을 놓을 계획이었으나, 생태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의 의견을 반영해 강바닥 아래를 지나는 하저터널로 구간 설계를 변경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