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준 근무 강동석씨 "요트 세계일주·히말라야·북극 도전 경험이 자양분"

박주희 2022. 6. 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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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탐험이다' 책 펴낸 강동석씨 인터뷰
한국인 최초 요트 세계일주
히말라야 브로드피크·북극점에도 도전
요트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최초의 한국인 강동석씨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았다. 그는 요트 세계일주외에도 히말라야 등반, 북극점 탐험 등의 내용을 담은 책 '인생은 탐험이다'를 출간했다. 김하겸 인턴기자

1994년 1월 14일. 9.2m 소형 요트 한 척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리나 델레이 항구를 떠났다. 7만3,000㎞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이 배는 하와이·사모아·피지·브리즈번·모리셔스·케이프타운·그레나다·오키나와 등을 거쳐 1997년 6월 8일 한국 부산항에 도착했다. 한국인 최초 ‘나홀로’ 요트 세계일주였다. 이 배의 선장은 당시 불과 28세였던 강동석(53)씨. 이후에도 그의 도전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히말라야 등반, 북극점 탐험 등 끊임없이 오지를 찾은 그가 자신의 모험담을 담은 책 ‘인생은 탐험이다’를 들고 27일 한국일보를 찾았다.

“요트 관련 서적을 읽다 보니 바다에 도전한 사람들 대부분이 백인이더라고요. 한국인 중에는 요트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례가 없었어요. 가슴이 뛰었습니다.”

강씨는 세계일주를 결심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요트 관련 서적에 탐닉했던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생사를 넘나든 직후였다. 강씨는 캘리포니아대학(UCLA) 재학 시절 주말캠핑을 떠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휴학을 해야 할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다. 그는 “단 하루만 산다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하게 됐다”며 “그때 우연히 손에 쥔 조지프 콘래드의 ‘바다의 거울’이라는 책을 읽은 후 요트 세계일주를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중고 요트(8.7m) 한 척을 구입했다. 그는 ‘선구자 1호’라 이름 붙인 이 배로 87일간 LA-하와이-부산을 항해했다. 인생 첫 바다탐험이자 세계일주의 전초전이었다. 태평양 항해에 성공한 그는 용기를 얻고 3년간의 준비를 마친 뒤 다시 배를 구매해 ‘선구자 2호’라 명명한 뒤 세계일주의 돛을 올렸다.

그러나 세계일주는 태평양 항해와는 차원이 달랐다. “20시간이 넘는 폭풍우에 전복 위험을 겪기도 하고, 반대로 적도 부근에서 무풍지대에 갇혀 일주일간 꼼짝없이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기도 했어요. 식수가 떨어져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기적적으로 내린 비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항해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폭풍도, 무풍도 아니었다. 그는 “외로움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며 “한 번은 배 안에 날아든 파리가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음식물 찌꺼기를 선실 곳곳에 떨어뜨려 놓았을 정도”라고 떠올렸다.

이때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강씨는 한 번 맺은 인연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히말라야 원정과 북극점 탐험도 잠깐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그는 “1차 태평양 항해 이후 1년간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있었는데, 당시 몸담았던 산악회 동아리의 전종주 대원이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원정을 제안해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때의 도전이 또 다른 인연을 낳았다. “브로드피크 등반은 고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동국대 산악부와의 합동 등반이었어요. 훗날 박 대장이 북극점 원정을 준비할 때 저를 떠올려 함께 떠나게 됐습니다.”

다양한 인연 만큼 이별도 많이 경험했다. 탐험가에게 이별의 종류 대부분은 사별이다. 그는 브로드피크 원정 당시 허승관 대원의 실종을 직접 목격했다. 훗날 박영석 대장과 오희준 대원, 이현조 대원의 비보도 전해 들었다. 모두 친형제처럼 지내던 이들이었다. 강씨는 “다음 세상에 우리가 함께 한다면 다시 한 번 같이 산에 오르고 싶다”는 말로 그들을 기렸다.

강동석(오른쪽)씨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해군호텔에서 열린 '인생은 탐험이다' 북콘서트에서 인사 말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강씨는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미국으로 건너 간 ‘이민 1.5세대’다. 부모님이 어렵게 일군 삶의 터전이 LA폭동으로 모두 날아가기도 했다. 이 일의 여파로 그의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아버지의 부고는 세계일주 중 기항지에서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그가 도전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젊은 시절의 도전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 회계법인 딜로이트를 거쳐 현재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 샌프란시스코 지점 내부 감사관으로 근무 중이다. "저는 역사 전공자로, 회계공부는 대학에서 1년간 수업을 들은 게 전부였어요. 그런데도 ‘도대체 요트로 세계일주를 한 젊은이가 누군지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다’며 회사에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크든 작든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마음껏 도전해보면 좋겠어요.”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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