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먹으면 큰일 나요".. 위험한 온라인 낙태약 거래 [뉴스+]
음지서 밀거래.. 중국산 등 잘못된 약 부작용 우려
정품이라고 100% 안전 아냐.. 법없어 관리 못해
식약처 '가교 임상' 진행중..낙태 법률 선결 필요
“인터넷에서 산 약 100% 가짜예요. 그거 먹으면 큰일나요.”
최근 종영한 tvN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고등학생 영주가 산부인과에 임신중절에 대해 문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친구 현이 용돈을 탈탈 털어 인터넷에서 ‘12주 미만이면 100% 성공’이라는 낙태약을 구했지만, 영주는 이 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약이 가짜일 확률이 높았고, 이미 임신 22주였다. 게다가 현재 국내에서는 모든 종류의 낙태약 사용 및 거래가 불법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인공임신중절은 더 이상 죄가 아니게 됐다. 하지만 관련 입법이 늦어지면서 낙태약에 대한 논의도 미뤄지는 상황이다. 그 사이 낙태약은 온라인 상에서 불법 거래되고 있으며, 가짜약이 유통되거나 사용자가 부작용에 시달리는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낙태는 무죄…‘낙태약 판매’는 유죄
법원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고 관련 판결에서 속속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은 2016년 업무상 촉탁낙태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던 산부인과 의사 2명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에 해당한다”며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규정은 효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2020년 4월에도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같은 해 7월 대전지법에서는 시술받은 여성과 의사 역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 지난해 4월 수원지법도 임신 5주 차에 중절 시술을 한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해 4월 부산지법 서부지원도 베트남에서 유산제를 들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판매한 사람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약품의 정당한 유통 질서를 교란하고 국민건강에 심각한 폐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어 이를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작용 우려 높은 낙태약 밀매…합법화 언제쯤
초기 임신을 수술 없이 중단할 수 있는 먹는 낙태약이 금지돼 있으니 외국에서 몰래 들여온 약이 음지에서 공공연히 거래된지 오래다. 인터넷 SNS에선 ‘부작용 없는 먹는 낙태약’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구한 약은 불법임은 물론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달 초 인천본부세관은 중국산 낙태약 수만정을 밀수해 미국산으로 속여 판매한 일당을 적발했다. A씨 등은 2020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정식 수입이 허가되지 않은 중국산 낙태약 5만7000여정(시가 23억원)을 밀수입했다. 적발된 약품은 중국산 약품은 불완전 유산, 심각한 자궁출혈 및 감염, 구토, 설사, 두통, 현기증, 발열, 복부 통증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설명했다.
정품 미프진이라도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2020년 미프진을 들여와 SNS에서 판매한 사람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재판부는 “미프진 복용자 중에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으며 패혈증 위험까지 경험한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불법 판매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경구용 낙태약을 하루 빨리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성계, 제약업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7월 먹는 낙태약인 ‘미프지미소정’(미프진) 심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먹는 낙태약의 정식 도입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미프진은 외국 의약품이 국내 허가를 받을 때 내국인에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가교 임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식약처는 특정 의약품이 인종별로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차이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가교 임상을 면제하지만, 지난해 의료계가 미프진의 가교 임상을 진행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수입사인 현대약품에 추가 자료를 요구해 심사하는 중이다.
법적인 문제도 걸림돌이다.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관련 기준이 법제화되지 않아 약물 낙태 범위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낙태죄 폐지 관련 입법 공백 상황에서 낙태약 허가가 이뤄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해당 내용을 포함한 낙태법 통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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