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체육폭력 근절을 위한 솔로몬의 해법 ..세 가지 층위에서의 처방
[스포츠서울 | 고진현 논설위원] 한국체육대학교 역도부에서 또 다시 폭력사태가 터졌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체육계 폭력은 도대체 언제쯤 그 질긴 사슬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마초문화’가 지배하는 체육계 특유의 정서와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요긴한(?) 수단으로 폭력을 용인한 전근대적 패러다임이 아직도 뿌리뽑히지 못한 탓이 크다. 또한 문제를 푸는 정교하고 치밀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도 고질적 악습이 반복되는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체육폭력 근절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지는 이미 10년도 넘었다. 사고만 터지면 별반 다를 게 없는 대책을 녹음기 틀듯 내놓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안타까움을 넘어 오히려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책은 가해자에게만 집중됐다. 폭력을 개인의 일탈로 위치지으려 하면서 “폭력에 대한 무관용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게 정책의 핵심 뼈대였다. 또다시 사고가 터지면 곁가지만 살짝 비틀 뿐 정책의 뼈대는 대충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잇따르는 사건과 사고에 정부는 과연 무관용원칙을 적용하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선언적 의미일 뿐 제대로 지켜진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사건이 커져 사회적 파장이 생기면 모를까, 또다시 구렁이 담넘어가듯 스리슬쩍 넘어가기 일쑤다.
체육폭력의 특이점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지도자와 선수, 그리고 선·후배가 엄격한 위계질서가 지켜지는 독특한 문화에서 생활하는 게 주목할 대목이다. 이같은 생활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권력관계로 재편되는 특징을 띠고 있다. 권력에 의한 통제가 가능한 탓인지 사건이 발생하면 다른 분야에 견줘 훨씬 잦은 은폐와 조작이 벌어지기도 한다. 체육폭력을 없애려면 가해자 뿐만 아니라 세 가지 층위에서 접근하는 총체적 해결책이 필요할 듯 싶다. 체육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 피해자, 관리자가 나타나게 되는데 최근까지의 정책은 가해자에게만 집중돼 있던 게 사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무관용원칙 등이 바로 가해자에 포커스를 맞춘 정책의 한 단면들이다.
체육폭력 근절의 성공은 피해자에게 나타나는 비논리적 현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체육은 폭력문화를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이상한 ‘마법’에 취해 있다. 폭력 사태이후 조사와 그에 따른 처벌 그리고 피드백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폭력에 저항하기는커녕 폭력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용성, 이게 바로 한국 체육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더 황당한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얽히고설키는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낸 체육폭력의 극단적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관리자의 영역 또한 중요하다. 폭력이 발생한 해당 학교나 단체,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상위집단 역시 사건의 파장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또 다른 2차 범죄의 주체로 등장하곤 한다. 그동안 관리자에 대한 정책은 사실상 전무했다. 향후 체육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건의 은폐와 조작 및 축소에 가담하는 사람이나 조직도 엄벌에 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마땅하다.
가해자에게만 집중했던 정책의 방향을 세 가지 층위로 확대하는 게 절실하다. 효과적 처방은 제대로 된 진단의 바탕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체육폭력은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복잡한 구조에서 태어난 유별난 존재라는 건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그것은 독톡한 역사와 환경, 그리고 다양한 체육 주체들이 권력관계로 재편되는 복잡한 구조에서 잉태된 무서운 괴물이다. 괴물이 강하면 괴물을 잡는 무기도 많아지고 세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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