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만 봉' 된 한전 적자 타령, 문제는 이거다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입력 2022. 6.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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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덕의 암중모색] 적자 원인 분석도 대책도 다 틀려.. 예산 80% 전력 구입비 적절성 따져야

[안호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유럽연합(EU) 특사단으로부터 결과 보고를 받고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전기도 복지인데, (한전의) 적자는 계속 커지고 있어서 전기요금을 올리긴 올려야 한다. 원전을 빨리 가동해서 (전기 생산) 원가를 다시 낮추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졸속으로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한 한국전력의 적자와 부채의 책임을 회피하고 전기료 인상의 짐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이다." -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전기도 복지인데, (한전의) 적자는 계속 커지고 있어서 전기요금을 올리긴 올려야 한다. 원전을 빨리 가동해서 (전기 생산) 원가를 다시 낮추는 수밖에 없다." - 6월 14일 유럽연합 특사단과의 오찬에서 윤석열 대통령

2021년 12월 27일 문재인 정부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적자 폭이 늘어나고 원자재 상승 등 외부적 요인을 반영할 필요가 있어 전기요금을 2022년 4월 10월 두 차례에 걸쳐 4.9원/kWh씩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탈원전 정책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집권하면 4월 전기요금 인상을 백지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 취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며 공약을 번복했다. 공약 폐기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한전 적자의 원인을 탈원전 정책 때문으로, 해결 방안을 원동 가동에서 찾고 있다는 거다.

한전 적자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책, 모두 틀렸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원전발전비중과 한전영업손익 비교 그래프. 지난 15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근거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여당 측 주장을 "거짓선동"이라고 비판했다.
ⓒ 양이원영 의원실 제공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실현 안 된 공약에 불과하다. 원전 발전이 전기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문재인 정부 집권 첫해인 2017년 26%에서 2020년 29%로 오히려 늘어났다. 탈원전 정책이 전기 수급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한전에는 적자, 국민들에게는 요금 인상을 안겼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찾기 힘들다.

전기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원전을 빨리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가동 중단은 노후화, 잦은 고장, 안전 문제로 인한 것이었지 탈원전 때문이 아님은 원전 운행일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 원전을 지어 전기 생산을 늘리는 데만 10년 이상 걸린다. 당장의 한전 적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한전의 대규모 적자에 대한 원인 분석도 대책도 모두 틀렸다.

한전의 적자 규모가 올 1분기만 해도 7조 8천억 원에 이른다. 이대로 올해를 넘기면 적자가 최대 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원유, 액화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연료비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있는 연료비 연동제가 2020년 12월에 도입되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에 인상 요인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결정이 한전의 적자를 키웠다면 문재인 정부에 일정 책임이 있다. 그래서 이제라도 연료비 연동제를 제대로 시행해 한전 적자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는 국민의 빚이다. 더 이상 부실이 커지기 전에 요금에 인상 요인을 반영하는 것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거나 '전기 요금 인상 불가' 공약을 고집하는 것보다 나은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요금 인상은 최후의 방책이 되어야 한다. 전기 요금이 한전에 수입이라면 지출의 투명성과 적절성도 따져봐야 한다. 한전 지출의 80%는 전기 구입비, 나머지 20%는 인건비 등 유지비다. 지난 2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한전의 자구 노력과 반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자 한전은 경영진 성과급 전액과 1급 이상 간부 성과급 50% 반납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처방이라기보다는 국민에게 위기감과 해결 의지를 보여주는 제스처일 뿐이다. 경영진과 고위 간부의 성과급 반납만으로 한전이 노력을 다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한전 예산의 80%를 차지하는 전력 구입비의 적절성을 살피는 것이 한전 적자 원인 규명의 첫 열쇠라 할 수 있다.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1년 치 넘은 민간발전사

민간 발전사인 GS EPS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2555억 원으로 작년 1년 치를 넘어섰다. 파주에너지 2310억 원, SK E&S 1051억 원, 포스코에너지 1066억 원, GS파워 940억 원, 에스파워 303억 원, 평택에너지 162억 원, 모두 1분기 영업이익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7개 사 영업이익이 8387억 원으로 작년 1년 치보다 286억 원 많다.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팔아온 회사들이다.

국민들은 폭등하는 유가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전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하루가 멀다 않고 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뒷전에서 민간발전사들은 석 달 장사로 1년 치 수익이 넘는 벌이를 하고 있다. 민간발전사만의 잘못만도 아니다. 비싼 값으로 전기를 사들이는 구조를 운영하는 한전과 감독에 태만한 정부, 모두 한전 적자를 키워온 장본인들이다.

민간발전사의 폭리에 가까운 영업이익이 발표되자 과도한 이익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전의 전력거래소를 통한 '전력도매가격'의 상한을 설정하도록 요청하는 국민 청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민간발전사의 반발도 있고 신재생 에너지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석 달 전기를 팔아 1년 치 수익을 거두는 전력 거래 구조를 유지하면서 전기 요금을 올려 한전의 적자를 메울 수는 없는 일이다. 연료비 연동제 시행보다 시급한 건 연료비가 오를수록 이익을 한없이 늘릴 수 있는 한전과 민간발전사의 잘못된 거래 구조를 바로잡는 일이다.

지난 4월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에는 한전의 독점 판매 구조를 허물고 다양한 수요 관리 서비스 기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이 포함되었다. 이를 두고 전기 민영화냐 아니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한전 전체의 민영화가 아니라 전력 판매만 분리해서 민간의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전 적자 구조로는 민간 판매사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이 판매 시장에 뛰어들려면 소비자에게 전기를 팔아 이익이 생겨야 하고, 이 이익은 전기요금 인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전기를 사들이면서 민간발전사에 막대한 이익을 몰아주고, 전기 판매시장을 개방해 민간 전기판매상에게 전기요금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통신 시장을 개방해 통신 요금 폭탄을 안겼던 후과보다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여전히 국민들만 봉이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시내의 전기계량기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정부는 7월부터 전기요금을 kWh당 5원 올리기로 결정했다.
ⓒ 연합뉴스
지난 27일 정부가 7월부터 전기요금을 kWh당 5원 올리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결정한 4월 10월 인상분까지 합치면 15% 선이다. 4인 가족 기준 1500원 정도의 인상일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국민들이 전기요금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인상 규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주택용 전기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는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산업용 전기에 비하면 여전히 차별적이고 높다. 또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성은 온 언론에 도배하다시피 역설하지만 자구 노력은 기껏 임원진들의 성과급 반납 정도다. 석 달 동안 1년 치를 버는 민간발전사와의 이해 못할 거래 형태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정부, 한전, 민간발전사 어디 하나 고치겠다는 의지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전기사용량이 세계 3위라며 언론마다 비중 있게 다뤘다. 무책임한 보도다. 산업용 전기 등 모든 전기사용량을 인구수로 나눠서 마치 국민들이 가정에서 전기를 낭비하는 것처럼 호도했다. 주택용 1인 전기 사용량 평균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전기를 많이 쓴다는 것,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전기요금이 싸다는 것만 부각한다. 언론이 내미는 수치만으로는 믿기 어렵다.

정부의 대책이나 호소도 마찬가지다. 연료비 인상의 고통을 분담하자지만 호소에 대한 공감보다 또 한 번 봉이 되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폭염의 7~8월, 옆집보다 전기를 덜 쓰면 전기료를 깎아주겠다는 어이없는 대책을 내놓은 윤석열 정부. 대체 국민들은 얼마의 전기를 쓰면서 살아야 하나? 옆집이 에어컨을 틀면 우리 집은 선풍기를 틀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 소등을 강요하던 유신 정권 때처럼 양초라도 준비해야하는 건가. 내놓은 대책이 더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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