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글로벌 '3중 혼돈시대'와 한국의 선택

기자 2022. 6. 2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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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

탈냉전 30년 낙관론 막 내려

평화 뒷걸음치고 공급망 혼돈

국제 규범과 거버넌스도 실패

민주주의國 네트워크 재구축

나토 확대정상회의도 그 일환

동맹 중심으로 능동 대처해야

냉전 종식 후 30년이 지나면서 국제사회는 새로운 혼돈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는 낙관론이 팽배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이라고까지 부르며 새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우선, 미국이 이끄는 일극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점점 확산되며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이 맹위를 떨쳤다. 세계적으로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진 것은 맞지만, 민주평화론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원리주의적 교리에 충실한 이슬람의 도전이 거세지고, 테러가 늘어나는 한편, 비자유주의적·권위주의적 국가들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 강대국 정치는 안정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중국의 도전은 만만찮고, 러시아는 크름(크림)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팽창주의적 양상을 보인다. 평화의 혼돈 상태다.

세계시장이 상호 의존적인 질서로 연결돼 글로벌화하고, 국경 없는 투자와 교역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화의 진전과 낮아진 국경의 벽은 빈부 격차의 증대, 이민과 난민의 증대를 수반하면서 반(反)글로벌화의 움직임이 거세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세력이 팽배하면서 글로벌화의 반전이 이뤄지고 있다. 자국 경제안보를 우선하다 보니 글로벌 공급망에도 혼선이 생기면서 상호 의존을 단절하거나 무기화하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상호 의존과 공급망의 혼돈이 팽배하다.

냉전이 끝나면 유엔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거버넌스가 제도화돼 세상은 점점 안정적인 관리 체제로 이행할 것이란 낙관론도 있었다.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면 국제사회의 규범에 순응적인 국가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도 걸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현실은 달랐다. 유엔은 강대국의 거부권으로 제 기능을 못 한 경우가 많고, WTO는 합의된 규범을 현실화하는 제도 정비에 실패하고 있으며, IMF나 세계은행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만들어지는 등 국제기구와 국제 규범의 혼돈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도 3중 혼돈시대의 도래를 자각하고 국제 전략을 대전환하고 있다.

우선, 국제분쟁에 대한 전면적이고 깊숙한 개입을 자제(restraint)하는 대신, 민주주의와 동맹국들의 네트워크 재구축을 통해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하려고 한다. 나토(NATO) 확대 정상회의는 그런 맥락의 반영이다. 또한,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국내 개혁(reform)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후한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첨단 기술 혁신과 교육 경쟁력 회복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한편, 국제적 기업들의 투자 확대 및 국내 복귀(reshoring)를 종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자주의에 대한 기대를 낮추면서 마음이 맞는 국가들끼리의 중범위 수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그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3중 혼돈이 전개되는 국제질서 재편 시대에 한국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첫째, 동맹을 협력의 핵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는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대한 협력자, 기회주의자, 저항적 수정주의자로 나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미명 아래 잔꾀를 부리기보다는 자유롭고 개방된 포용적 국제질서를 지키고 확산하는 편에 서야 한다. 한국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질서를 활용해 성장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둘째, 다자 질서에서의 새로운 규범 형성과 실현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동시에, 공급망과 무역을 다변화할 수 있는 태세를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노동·세제·규제 개혁 등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 세계의 추세를 따라간다는 수동적 자세를 넘어서서 한국이 국제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역량에 걸맞은 중추적 역할을 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 산업 등 첨단 기술 영역에서의 격차를 늘려 가면서, 문화 콘텐츠 등 소프트 파워를 십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키워가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우수한 한국의 인재들이므로 인적 자원의 경쟁력과 포용력을 키워가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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