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은 어떤 소년을 떠올렸을까

황예랑 기자 입력 2022. 6. 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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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1419호 표지이미지

희정(가명)이는 ‘캔디’ 같은 친구였다. 구김살 없이 밝았고, 깔깔대며 잘 웃었다. 자그마한 몸집과 달리 씩씩했다. 가끔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날엔, 젓가락 하나 들고 장난꾸러기처럼 친구들의 밥과 반찬을 뺏어먹곤 했다. 엄마나 집 이야기는 거의 꺼내지 않았다. 나도 일부러 캐묻지 않았다. 아빠와 동생 이야기만 간간이 들었다.

캔디처럼 잘 울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희정이가 어느 날 모두의 앞에서 울었다. 수업시간에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찬반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희정이는 번쩍 손을 들더니 일어났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끝이 아니”라고, “아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부모가 얼마나 무책임한지 아느냐”고 또박또박 이야기하다 말고 그만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어느 날 희정이 친한 친구 네댓 명을 집에 초대했다. 그날에야 우리는 알았다. 남동생과 둘이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 맡겨져, 다른 언니 오빠들과 한방을 쓰며 살고, 가끔 말한 ‘아빠’가 보육원 원장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희정이가 왜 낙태 이야기를 하다가 울었는지, 젊은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여느 친구들과 달리 희정이는 왜 아빠처럼 인자한 국사 선생님을 유난히 따르고 좋아했는지 그제야 비로소 이해했다.

열일곱에 처음 만난 희정이와 나는 그렇게 같은 반에서 울고 웃으며 2년을 함께한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됐다. 희정이 아니었다면, 나는 책 속 세상이 전부인 줄만 아는 안온한 사춘기 철부지가 됐을지 모른다. 20대 후반 애인도 없는 나에게 결혼 부케를 던져줬던 희정이는, 지금은 자기와 남편을 똑 닮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재단하는 말을 꺼내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면, 나는 희정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부모 없이도 얼마나 밝고 바르게 자랄 수 있는지, 친구를 대신해 마구 따져묻고 싶어진다.

“소년들의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소년범을 엄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중략) 한 아이가 망가지는 데도 온 집안과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 소년보호재판을 1년6개월간 담당했던 박주영 판사가 책 <어떤 양형 이유>에 써놓은 문장을 읽으면서도, 나는 다시 그 옛날 청소년이었던 희정이를, 희정이와 같이 살았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2년 6월22일 경기도 안양소년원을 찾아가 “흉포화하는 소년범죄로부터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이 말을 하면서 어떤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을까. 그의 머릿속에 있는 소년은 어떤 존재일까. 한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속도를 내는 일 중 하나가 ‘촉법소년 연령기준 하향’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소년범죄 사건이 터져나올 때마다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인기’를 중시하는 장관 입장에선 가장 먼저 풀고 싶은 숙제였을 게다. 하지만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 하도록 돼 있는 촉법소년 연령을 만 10~13살에서 10~12살로 낮춘다고 과연 국민이 더 안전해질까.

손고운 기자가 부산에서 과거 촉법소년이었거나 현재 보호처분을 받고 있는 당사자 7명을 직접 만나, 그들이 범죄에 이르게 된 삶의 곡절을 듣고, 연령기준 하향 같은 방식의 엄벌이 소년범죄를 막을 수 있는지 물었다. 소년원장, 소년부 판사, 소년원 교사, 소년위탁보호위원 등을 맡으며 소년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의견도 들었다. 신지민 기자는 법적 쟁점과 외국 사례 등을 살폈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벌은 받아야 하겠지만, 그 원죄는 결국 어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곱씹어본다.

마지막으로, 뉴스레터 <썸싱21> 홍보를 또다시 하려 한다(독자 여러분이 지겨우시더라도 당분간은). 지난주 창간호에 이어 2호를 발행했다. <썸싱21> 2호의 제목은 ‘사장님, 삼겹살 불판 갈아주세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QR코드를 찍어서 확인해주시기를!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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