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메뉴판' 전략적 설계 없는 尹정부.. 역대정권 실패 반복 우려

기자 2022. 6. 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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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준모의 Deep Read - 노동개혁 성공을 위한 전략

청사진 없이 ‘낱개 노동메뉴’로 접근땐 개혁 불발

‘획일적 저녁이 있는 삶’ 대신 ‘내가 원하는 안식처’ 보장을

청년일자리·혁신경제·유연안전성이 핵심

근로생애 ‘질기고 길게’ 만드는 근로시간·임금체계 유연화가 주요 과제

고용노동부가 최근 ‘주52시간제’를 월 단위로 관리해 근로시간제도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부처 발표에는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는 노동개혁의 큰 그림이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낱개 메뉴부터 발표했다는 점, 또 하나는 전문가협의체에서 개혁에 관한 종합 청사진이 마련되기 전에 특정 메뉴부터 설익은 채 제시해 사회적 대화 관리전략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과거 정부의 노동개혁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혁신경제, 유연안전성(flexicurity)을 담아내야 진짜 노동개혁에 접근할 수 있다. 근로생애를 ‘굵고 짧게’에서 ‘질기고 길게’로 전환해 ‘내가 원하는 안식처’를 만들어내도록 돕는 근로시간·임금체계 유연화가 핵심이다.

◇전략 없는 개혁

노동개혁을 시도했던 역대 정부의 실패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노동개혁의 가치, 당위성, 방향성과 관련한 국정철학을 이해하거나 왜 노동개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적었다.

김대중 정부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외화 차입 조건으로 담긴 노동시장 유연성은 국가 위기의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의 노동개혁 시도는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할 수 없다. 국민 대통합 및 세대 간 상생 차원에서의 차별적인 가치나 철학, 그리고 사회제도의 종합설계가 필요했지만 범정부 차원의 통일된 가치와 비전이 없었고, 노동개혁 메뉴판의 설계도 전략적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앞세운 노동개혁을 추진했는데 노동계가 ‘쉬운 해고’의 부정적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해고는 살인이다”로 응수하는 바람에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더불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와 세대 간 갈등 사이의 연관성을 간과한 채, 기계적인 노동시장 유연화 접근법만 고집함으로써 세대 간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과 고민은 부족했다.

역대 정부는 노동개혁의 ‘과정관리(process management)’ 전략도 부족했다. 독일과 아일랜드처럼 정부의 책임행정 아래 전문가협의체 중심으로 노동개혁안을 먼저 만들고 노사가 사회적 대화로 미세조정을 해야 했다. 정부의 책임행정이 전제되지 않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광범위한 딜(deal) 방식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실천 없는 추상적인 수사(修辭)와 노사 간 사진찍기만 남았다.

◇핵심은 유연화

윤석열 정부는 다양한 노동개혁 초기 논의를 시도할 수 있다. 핵심 주제어는 단연 ‘청년 일자리’ ‘혁신경제’, 그리고 ‘유연안전성’이다.

기성세대의 일자리 하나를 지킬 때 청년들의 일자리 두 개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고, 산업 4.0시대에서 경제와 일자리 생태계가 조화롭게 혁신돼야 한다. 또 실효성 있는 강건한 사회안전망과 직업훈련체계를 구축하되 경직적인 노동제도는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윤 정부가 직면한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의 ‘실현 가능한 노동개혁’의 세부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근로시간제도와 임금체계의 유연화다. 근로시간제도의 개혁 방향은 근로시간의 경직된 규제의 틀을 벗어나 집단자치를 확대하고 개인의 자치결정권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획일적인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MZ세 대를 위한 ‘내가 원하는 케렌시아(안식처)’를 보장하는 방식이어야 맞는다.

지방 근무 청년들도 근로시간 선택 폭을 넓혀 거주, 문화 향유, 결혼 준비 등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규직의 자발적 근로시간 단축형, 즉 ‘파트타임 정규직’ 일자리 확대를 통한 근로시간의 실질적 단축도 필요하다.

임금체계의 유연화는 노동개혁에 늘 등장하는 메뉴다. 핵심은 과도한 연공급을 개혁하는 것이다. 근속기간이 아닌 업무와 성과가 보상의 기준이 되게, 근로생애를 ‘굵고 짧게’에서 ‘질기고 길게’로 전환하도록 임금체계, 직무설계, 근로시간제도 개선의 연립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고령 근로자의 경우에는 일자리 조기퇴직 이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호핑(hopping)’ 유형의 후진국 은퇴 패턴에서 벗어나, 더 길게 일할 수 있는 선진국형 은퇴 패턴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개혁은 연금개혁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산업 4.0시대의 개혁

‘실현 가능한 노동개혁’의 두 번째 내용은 노동제도의 자기결정권 확대다. ‘건강권은 국가가, 노동 총량은 집단적 자치로, 근로시간의 선택은 개인이’를 신조로 해서 근로자의 시간 주권의 다양한 행사가 존중받도록 근로시간제도의 획일주의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

생애주기에 따라 시간제와 전일제를 옵션으로 선택하는 것이 일단 중요하다. 또 ‘학령기=학습, 성인기=일, 노령기=여가’의 정형화된 분절 트랙을 ‘학습+일+여가’로 동시에 배분되도록 바꿔, 자기결정권이 강화된 시간선택제를 실시하도록 평생학습체제를 지원해야 한다. 여성 근로자의 경력단절 방지 및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이나 부성휴가의 양성평등 수준으로의 확대도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고 개인의 시간 결정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법·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실현 가능한 노동개혁’을 위한 세 번째 내용은 사회안전망과 직업훈련체계의 디지털화다. 현재 고용 인프라는 ‘새총으로 전투기 잡기’ 격이다. 실업급여를 받으려 고용센터에 가면 적합훈련 안내는 ‘5분 땡처리’로 그친다. 고용서비스도 저임 직종을 중심으로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공하기에 급급하다. 직업훈련은 물량 규제와 가격 규제에 눌려 저급하게 반복되기 일쑤다.

따라서 디지털 직업훈련 인프라를 구축해 산업 4.0시대에 걸맞은 청년 직업역량을 강화하는 게 노동개혁의 주요 과제가 돼야 한다. 원하청 하도급 단계가 내려갈수록, 아웃소싱이 많아질수록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가 커지고 ‘균열 사회안전망(fissured social safety net)’이 되므로 국세청의 조세·사회안전망이 통합적으로 디지털화해야 한다.

또 산업 4.0→노동 4.0→사회보장 4.0의 흐름에서 사회보장을 구태 노동법으로부터 절연시키며, 고용이든 자영업이든 보수·수입에 사회안전망 비용을 포함하는 식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디지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윤 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전 한국노동경제학회장

■ 세줄 요약

- 전략 없는 개혁 : 역대 정부는 노동개혁에 전략을 담지 못했음. 최근 윤석열 정부가 근로시간제도의 유연성 관련 발표를 했지만 이 역시 노동개혁 메뉴판의 전략적 설계 없이 낱개 메뉴부터 발표한 것에 불과.

- 노동개혁의 핵심 : 청년 일자리, 혁신경제, 유연안전성이 실현돼야 진짜 개혁. ‘획일적인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안식처’를 만들어내도록 돕는 근로시간·임금체계 유연화가 핵심적으로 중요.

- 산업 4.0시대의 개혁 : 노동제도의 자기결정권 확대, 사회안전망과 직업훈련체계의 디지털화도 주요한 과제.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의 노동개혁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하지 않으면 안 됨.

■ 용어 설명

‘유연안전성(flexicurity)’은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의 합성어. 기업에는 해고와 채용의 유연성을 주고, 근로자에게는 사회안전망 등을 통해 소득과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

‘산업 4.0’은 제조업과 IT가 결합한 형태의 산업 형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제조업의 디지털화와 관련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생산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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