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넘어 '글로벌 무티'로..최장수 총리 메르켈 리더십 비결

임형두 2022. 6. 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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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언론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 신간 '메르켈'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내가 총리로 재임하는 한 독일 국경에 철조망은 없을 겁니다."

독일의 '무티(엄마)'로 일컬어지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68). 2000년에 기독교민주연합(CDU) 사무총장 자리에 오른 그는 2005년 11월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최연소 총리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12월까지 무려 16년 동안 총리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독일 최장수 총리가 된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의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프랑스 언론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메르켈이 총리가 되고 퇴임하기까지 16년 동안의 발자취를 추적한 전기 '메르켈'로 포용 정신에 기반한 무티 리더십을 상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찾는 리더의 전형이기에 좀 더 깊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어느 쪽으로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서독에서 태어나 동독에서 자란 메르켈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경계에 위치함으로써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일을 진정한 통일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훌륭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그의 포용 정신은 자신과 반대되는 정당과 연립정부를 꾸릴 수 있게 했고, 유럽의 중심 독일이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중추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엔 '독일 원전 제로'를 선언하고,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난민 100만 명을 수용하기도 했다.

이런 리더십에 전 세계인이 감동했다. 그리고 메르켈의 정치 지평은 날로 확장돼 그는 독일을 넘어 유럽연합(EU)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메르켈 리더십의 비결을 파헤쳐 볼 만한 이유다.

여섯 살 때인 1960년의 앙겔라 메르켈의 모습.[한길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89년 동서독 시민들에 의해 붕괴된 베를린 장벽.[한길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동독에서 목사로 일하기로 결심한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자유를 억압하는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성장하면서 자유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됐다.

열아홉 살 나이에 발트호프를 떠나 라이프치히의 카를마르크스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메르켈은 아들러스호프 과학아카데미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과학자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과학자 메르켈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사건은 1989년 11월 9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였다. 이를 계기로 메르켈은 물리학 연구와 이전의 삶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분야인 정치에 입문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그에게 새로운 열망을 불어넣은 대사건이었던 셈이다.

소규모 야권 단체인 민주약진(DA)에 가입한 뒤 특유의 신중함과 진지함, 침착함, 겸손함, 성실함으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산 그는 이후 CDU에 들어가 데메지에르 정권의 부대변인이 된다.

180일 동안 지속된 데메지에르 정부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한 메르켈은 이후 헬무트 콜 서독 총리에게 발탁됐고, 1990년 12월 선거에서 승리해 여성청소년부 장관 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이 모두가 정치 입문 1년도 안 된 기간에 일어났다.

'정치적 UFO(미확인 비행물체)'로 회자됐던 메르켈. 그녀는 1994년 선거 이후 환경부 장관으로 직책을 옮기면서 노련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CDU 당 대표로 선출된 지 5년 만에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철의 장막 반대편 출신 첫 총리로 선출됐다.

메르켈 리더십은 어떤 점에서 남달랐을까? 저자는 메르켈리즘으로 불리는 메르켈 리더십의 독특한 면모는 실용주의, 신중함, 용의주도함, 타협, 도덕적 가치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한다. 독재정권으로부터 신중함을 배웠고, 과학에서 느림을 받아들였으며,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이 작동할 때 기뻐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메르켈 시대는 재정, 경제, 기후를 비롯해 테러, 난민, 보건, 지정학 등 일련의 위기에 맞서 리더십 모델을 보여준 시대였다"면서 "이 시대에 독일은 세계 4위, 유럽 1위의 강대국 대열에 올라섰고, EU와 무조건적 연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독일이 세계의 호감을 얻게 된 시대에 메르켈은 자국에 권력, 신뢰, 도덕성, 호의를 가져다줬을 뿐 아니라 세계의 정치를 중재한 글로벌 무티였다.

메르켈의 이름은 독일에서 동사로 쓰이기도 한단다. '메르켈하다'는 말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 눈에 띄지 않게 목표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친숙하고 따뜻한 겸손과 배려의 리더십이라는 평가가 담겼다.

김지현 옮김. 한길사. 360쪽. 2만2천원.

2005년 총리로 선출된 앙겔라 메르켈이 자신을 발탁해준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동서독 통일을 이룩한 역사적 거인이었던 헬무트 콜 전 총리를 바라보고 있다.[한길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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