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아랍의 봄'은 튀니지에 독이었나..41%는 후회, 왜?

우수경 입력 2022. 6. 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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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시디 부 사이드’


아프리카 대륙 북쪽 끝에 위치한 튀니지는 우리에게는 2010년 '아랍의 봄' 혁명이 시작된 곳, 이후 유일하게 민주화가 성공한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온화한 지중해 기후에 튀니지의 산토리니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해변과 카르타고 유적 등이 있어 유럽인들에게는 관광지로도 유명합니다. 최근 전 세계 식량위기가 불거지면서 '아랍의 봄'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를 낳고 있는 곳들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시디 부지드 광장에 새겨진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얼굴


■ 식량난·실업에서 비롯된 '아랍의 봄'…"자유 위한 혁명 아냐"

'아랍의 봄'은 지난 2010년 12월,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3시간여 떨어진 시디부지드라는 도시에서 시작됐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노점에서 과일과 채소를 팔던 부아지지는 허가를 받지 않고 장사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과일과 채소를 모두 압수당하게 됩니다. 이를 찾기 위해 경찰에 돈을 바쳐야 했지만 그럴 돈이 없었던 부아지지는 항의를 하다 구타를 당하고 민원을 제기하지만 무시당하자 결국 시청 앞에서 분신을 시도하게 됩니다. 채소를 팔던 청년의 죽음은 곧 시위로 이어졌고, 북아프리카와 중동 곳곳으로 혁명은 번지게 됩니다.

당시 청년의 죽음과 비참한 상황에 공감해 적극 나서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었던 변호사이자 활동가 칼리드 아와이니아 씨. 부아지지의 죽음 이후 광장에서 첫 연설은 물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연설을 통해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그는 여러 사회적 요인들이 사회적 폭발로 이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로 이어진 혁명의 결과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혁명의 의의가 왜곡됐다는 겁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할 기회를 원했고, 정의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했습니다. 자유를 위한 시위가 아니었습니다"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도 혁명에 대한 생각은 같았습니다.

나아지지 않은 실업률과 식량난. 오히려 현재 상황은 당시보다 더 좋지 않다고 입모아 말합니다.

2010년 당시 혁명에 참여한 뒤 경찰이 쏜 총에 팔을 맞아 다친 하샴 감모디 씨.

혁명으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비참합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감모디 씨는 결국 어디에서도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친 팔로는 일자리도 구할 수 없습니다.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고 혁명에 참여했지만 이제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튀니지 시장의 모습


■ 튀니지 국민 41% "아랍의 봄 혁명 후회"

실제로 아랍의 봄 10주년을 맞아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튀니지 국민의 41%가 "혁명을 후회한다"고 답했습니다.(Guardian-YouGov poll, 2010)

'아랍의 봄' 혁명 이후 독재를 행하던 벤 알리 대통령은 쫓겨났고, 2018년 지방선거 실시, 2019년 민주적 선거를 통한 카이스 사이예드 대통령 선출 등으로 이어지면서 민주화 바람이 불었습니다. 튀니지의 이같은 민주화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해결되지 않은 경제적 문제들이 쌓이고 있었고, 민주적으로 공평하게 나눠가진 권력은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지만, 정작 먹고 사는 일은 해결되지 않았던 겁니다. 튀니지 국민들은 "도둑이 많아 못 살겠다", "차라리 이전이 낫다"고 말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왼쪽] 하이킬 메키(샤프당 소속 전 의원/대통령 지지), [오른쪽] 아주미 누리미(아나흐다당 소속 전 의원/야당)


■ 튀니지 국민 70% "대통령 지지…봄이 오기를 기다려"

현재 튀니지에는 공식적으로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지난해 7월 카이스 사이예드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사이예드 대통령은 의원들이 의회에 들어가지도 못하도록 옆에 위치한 국립박물관도 폐쇄해버렸습니다. (박물관 옆문을 통해 의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총리도 해임하고 최고 사법위원회도 해체했습니다.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한 모양새입니다. 겨우 민주화를 이뤘는데 다시 독재가 돌아왔다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많은 튀니지 국민들이 대통령 정책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70%를 넘나듭니다. 그 동안 부패했던 권력들을 다 처벌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강한 리더십을 원하는 겁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당 성향의 하이킬 메키 전 의원은 "지금은 예외적인 조치들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독재로 가지 않도록 튀니지 국민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제난에 정치적 불안까지 더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우려도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야당에 속해있는 아즈미 누리미 전 의원은 "위기는 더 복잡해질 것이며 튀니지 경제는 파산을 신청하기 직전"이라며 "국가가 아주 안 좋은 재정위기에 처해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우선 순위가 경제가 아닌 점이 우려스럽다"고 비판했습니다.

현재 튀니지의 경제 상황은 '아랍의 봄' 이전보다 좋지 않습니다. 40만 명이 관광업에 종사하는데, 코로나 2년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실직했습니다. 관광객의 대부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인이었는데 전쟁 이후로 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발표에 의한 실업률은 16% 정도로 나오지만 실제 일할 수 있는 연령층의 실업률은 40%를 넘는다는 조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주식인 밀의 70% 이상을 수입하고 이 가운데 50%를 우크라이나로부터 공급받았던 구조도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IMF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IMF는 언제나 그렇듯 개혁안을 요구했고, 튀니지 정부는 예산의 40%에 달하는 공공부문 임금을 줄이고 기름과 빵 등 필수품에 대한 보조금도 줄이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는 결국 공항과 물류, 공공기관 등을 모두 마비시켜버렸던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 아랍의 봄 다시 혁명 일어날까? 튀니지 국민들은 "노!"

'아랍의 봄' 당시보다 더 좋지 않은 경제, 거기다 전세계적으로 희망적인 소식은 거의 들려오지 않는 최근 상황. 튀니지 국민들은 다시 혁명을 꿈꿀까.

대답은 "아니요" 입니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혁명은 답이 아니라는 게 대다수 튀니지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현재 대통령의 개혁에 많은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12년 전 아랍의 봄 혁명이 '먹고 살기힘들다'는 간절함이 쌓여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오늘날 중요한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어느 지역이 폭발할 지 모른다"며 "튀니지는 불안 요인들을 거의 다 갖고 있고 전력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수경 기자 (sw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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