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무겁던 짐 내려놓고 이젠 안식하소서~

기자 2022. 6. 28. 09: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그립습니다 - 이동우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초대회장(1933∼2022)

흔히 앞장서서 일하는 여성을 보면 ‘기가 세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력이 강하다는 표현이겠다. 그녀의 눈매는 언제나 강한 의지력과 총명함으로 번뜩였다. 그녀는 가끔 “사람들이 나를 정신대 할머니”라고 부른다며 웃으시곤 했다. 그만큼 그의 삶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대명사요, 기수를 든 선구자였다.

내가 코로나19로 인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 있는 요즈음, 미국으로부터 이동우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초대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플로리다주 템파에 거주하셨는데, 올해 89세로 근래 몸이 점점 연로해지고 계시다는 소식은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별세 소식을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져 그가 평소 자주 표현하던 “모자 벗고 경의를 표합니다”로 그리운 마음을 전한다. 그의 열정적인 영혼의 소리가 메아리쳐 들리는 듯하다.

그녀를 처음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던 때는 1992년 11월 초가을 신학대학 캠퍼스에서 공부에만 파묻혀 살던 시절, 우연히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물어 찾아간 곳이 멕크린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담한 워싱턴 연합 교회(당시 조영진 목사 담임)였다. 이른 저녁 시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향후 추진할 계획들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열어 가고 있었다. 앞에서 회의를 이끌어 가고 있던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를 먼발치서 감명 깊게 봤다.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1991년 당시 한국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을 시작으로 충격에 싸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첫 모임, 워싱턴 정대위 발족 현장이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밟히고 잊힌 역사의 피해자들을 위해 마음을 합해 뜻을 세우는 용기 있는 그들의 도전을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운명적 만남은 5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로 이어진다. 1997년 미 국회의사당에서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사진 전시회, 김학순 할머님의 증언 등 행사에서 이 회장과 처음으로 손을 마주 붙잡으며 연을 맺었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내 마음에 품어나는 의협심을 꿰뚫어 봤다. 그 만남을 인연으로 우리는 동지가 돼 수많은 시간을 함께 뛰어다녔다. 큰일을 치르면서도 침착하고 대범한, 여장부 같은 그녀 곁에서 자연스럽게 동역자가 됐다. 자랑스러운 선배님이다.

그녀는 1992년부터 9년간 회장으로서의 긴 세월을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미국 정부, 언론계, 그리고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횃불을 들었다. 경기여고를 거쳐 1957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66년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가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다. 1992년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을 들은 후, 그녀의 삶이 바뀌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이 문제에 당신의 삶을 올인하기 위해 퇴직했다. 어떻게 위안부 문제에 동기를 갖게 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일본군 위안부 시대의 현장에 살았다면 그것은 나의 스토리가 될 수도 있기에”라며 마음을 쏟아냈다.

그는 1996년 9월 김윤심 할머니를 초청해 미 정부 관계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15명의 인터뷰를 비디오로 제작하고, ‘Comfort Women Speak’의 증언집을 출판했다. 또한 엘리 로젠바움 미 법무부 특별 수사국장과 일본 전범들의 미 입국 저지 법을 발효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2000년에는 미 국회의사당에서 한국, 필리핀, 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청, ‘존엄과 명예의 여성을 위한 2000년 인권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01년도 대한민국 여성주간 행사에서 국민포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는 “지난 10년간 정신대 운동을 통해 얻은 진리가 있다면 승리는 포기하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을 내비쳤다.

그녀의 횃불을 이어받았던 나는 함께 일했던 시간,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기억들을 되새기며, 한 많은 위안부 문제가 어서 속히 해결되기를 기도한다. “회장님, 그 무겁던 짐을 내려놓고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안식하소서.” 우리가 이어받은 소명은 계속 이뤄나갈 것이다.

서옥자 워싱턴 정대위 제2대 회장(2001~2008)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