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 유럽풍 기와 5만장.. 신도들이 직접 쌓은 공동체 미학

장재선 기자 2022. 6. 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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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방주교회는 붉은 기와지붕을 한 건물이 바깥 회랑으로 이어지며 주변 자연풍경과 어우러진다. 장재선 선임기자·삼척방주교회 드론 촬영
예배당 내부 모습. 가로 8m, 세로 18m로 작지만, 높이가 12m나 되고 창호가 많아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장재선 선임기자
서승원 목사
강병근 교수
물 위에 떠 있는 배 모양을 한 제주 방주교회 전경. 장재선 선임기자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3) 삼척 방주교회

성도 1000명이 기왓장 기부

건축하며 체중 20㎏ 줄기도

교회 건물 곳곳 창호 254개

석양 질 무렵 무지개 만들어

교회서 버려진 의자를 마루로

수십년 ‘기도의 영성’ 숨쉬어

보행기·유모차·휠체어 공간

사회적 약자 위한 설계 충실

한국교회의 건축 미학을 다뤄보고 싶다고 주변에 이야기했더니 여기저기서 제보가 쏟아졌다. 그중 삼척 방주교회를 택한 것은 외형의 아름다움에 끌려서였다. 붉은 기와지붕을 한 건물 세 채가 회랑으로 이어진 유럽풍의 건물이 사진 이미지로만 봐도 매혹적이었다. 강원 끝자락인 삼척시 원덕읍에 이런 교회가 지어진 사연을 알아보고 싶었다.

교회를 찾아가 보니 앞에 강이 흐르고, 뒤엔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왕복 2차선 도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동해선 원덕역이 인근에 건설 중이었다. 여느 교회와는 달리 건물 외부에 십자가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새로 생긴 학교냐, 아니면 상업시설이냐고 묻곤 합니다. 설계 때 십자가를 걸 공간을 만들지 않아서인데요. 그래도 있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신도들의 의견을 모으는 중입니다.”

서승원(49) 담임목사는 서그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와 인사를 나눈 직후 혼자서 뒷산에 올라갔다. 산 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면 어떤 모양인지 보고 싶어서였다. 나무에 가려서 붉은 지붕만 흐릿하게 보였다. 산에서 본 풍경을 전하자, 서 목사는 “교회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순례 명상 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교회를 둘러보며 조금 부끄러워졌다. 신앙공동체의 미학에서 건물의 외형미는 극히 일부분인데, 그것에만 눈독 들였음을 금세 깨닫게 돼서였다. 서 목사는 교회 내부를 지역 주민들이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꾸미는 데 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2층에 크고 작은 방을 많이 만들어놨는데, 누구나 와서 먼저 쓰는 이가 주인이라는 것이다. 지역 아동을 위한 무료 공부방 공간도 마련했다. 나무 십자가를 만드는 방도 있다. 전 세계 나무를 구해서 현재 30개를 제작했다. “버려진 나무를 주워 올 때가 있는데, 그걸 가만히 계속 쳐다보면 십자가가 보입니다.”

1층 예배당은 가로 8m, 세로 18m로 예상보다 작았다. 교회부지 400평 중 40평 정도만 썼단다. 그래도 층고가 12m로 높아서 시원한 느낌을 줬다.

“창호가 많이 있지요? 빛이 스며들어와 석양이 질 무렵엔 무지개를 만듭니다. 교회 전체에 창호가 254개 있는데, 단열을 위해 벽체를 두껍게 했습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지요.”

독실한 신앙인들께 죄송한 말이지만, 순례자는 반주그레한 목회자들의 달변을 한 귀로 흘려듣곤 한다. 거기 담긴 열띤 기운이 부담스러워서다. 그런데 서 목사의 이야기는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특히 예배당 강단과 마룻바닥을 오래된 교회에서 버린 장의자로 만들었다는 대목에서 그랬다. “그 교회의 신도들께서 수십 년 눈물로 기도하며 의지했던 의자의 목재이니 영성을 느낍니다.”

바닥 타일은 한 기업인이 창고에 보관했던 걸 기부했다. 무늬와 색상이 제각각이라서 모자이크하듯 배치한 것이 일부러 의도한 것처럼 독특한 미감을 준다. 예배당 입구 바닥은 모자란 타일 수량을 맞추다가 십자가 모양이 됐다.

지붕에 얹은 5만 장의 포르투갈산 기왓장은 1000명의 신도가 기부한 것이다. “재작년 4월 착공했는데, 골조 등 기술적인 부분만 전문업체에 맡기고 나머지는 신도들이 직접 지었습니다. 작년 성탄 때 첫 예배를 올릴 수 있었지요.”

서 목사는 공사 중 육체노동을 하느라 체중이 20여㎏이나 빠져 건강해졌다며 웃었다. “이정래 전도사님과 함께 장로, 권사님들도 모두 몸무게가 줄었다고들 하시더군요. 외부에선 불가능한 공사라고 했지만, 교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서 기적을 이뤄낸 것이지요.”

서 목사 곁에서 그의 아내 김윤비 씨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돼 남편과 함께 삼척으로 와서 신앙공동체를 가꾼 시간이 암암히 떠오르는 듯했다.

경기에서 태어나 자란 서 목사는 부천 광림교회 전도사였던 지난 2004년, 한 장로의 권유로 삼척 호산항에 와서 방주교회를 개척했다. 노아의 방주처럼 지역주민에게 희망을 주고, 모세의 테바(tebah)처럼 사람을 구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힘껏 가꿨다. 그런데 호산항에 화력발전소와 LNG 기지가 들어서면서 지역민들이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서 목사는 이주민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앞장섰는데, 복잡한 사정이 얽히며 마을 설립은 무산됐다. 우여곡절 끝에 교회를 지어 지역민의 구심 역할을 꾀하기로 했다.

서 목사는 “시골교회 구성원들이 공사를 직접 해낼 수 있었던 데는 무료로 설계 봉사를 하신 강 교수님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했다. 설계자인 강병근(70) 건국대 건축대학 명예교수를 말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한려해상공원 외도 ‘보타니아’, 제주 ‘에코랜드’, 경기 가평 ‘쁘띠프랑스’ 등을 설계한 건축 대가다. 장애인, 노인들을 위한 건축 연구에 힘써 경남 거제 ‘애광원’, 충남 서천 ‘성일복지원’도 그의 손을 거쳤다.

강 교수는 작년 6월부터 서울총괄건축가(부시장급)로 일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시청에서 만났을 때, “교회 건축의 미학은 건물 그 자체보다는 구성원들이 신앙 공동체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면서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전에 이메일과 SNS 등을 통해 수차례 문답을 했을 때도 일관되게 강조한 말이었다. “방주교회 신도들이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만큼 건물을 지으며 조각보처럼 이어갈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그 조각 하나하나가 공동체 구축 역사가 됐으면 합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광산업을 하는 부친을 따라 삼척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대학 정년 퇴임 후 삼척시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중 ‘아름다운 지역 만들기’ 강연을 했는데, 서 목사께서 그걸 들은 후 이주민 공동체를 위한 건축 설계를 부탁해왔습니다.”

강 교수는 서 목사와 함께 부지를 고르러 다니며, 지역 노인들이 오기 좋게 교통이 편리한 곳을 택했다. 그는 무료로 설계하는 대신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설계 변경을 하지 않고, 신도들에게 건축 명목의 작정(作定) 헌금을 받지 않으며, 지역민에게 개방하기.

서 목사는 “처음엔 의아스러웠으나, 공사를 진행하며 교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설계 변경을 하지 않으니 교회 구성원들이 의견 다툼을 할 일이 없었고, 작정 헌금을 받지 않으니 봉사와 기부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강제로 이주당한 아픔을 지닌 지역민을 위한 커뮤니티 역할은 교회의 본질이니 당연히 실천해야 할 일이었다.

강 교수는 우리 시대의 종교가 이웃을 위하기보다 오로지 ‘나의 신앙’만을 향해 있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같은 게 터지면 종교인들이 가장 먼저 봉사와 희생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일상에서 공동체를 위해 솔선수범해야 진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강 교수가 교회 설계에서 장애인, 노인을 배려한 것은 당연하다. 화장실은 휠체어, 유모차, 노인 보행기가 들어갈 수 있게 건식(乾式)으로 지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공간도 확보해놨다.

강 교수의 뜻에 따라 신도들과 함께 차근차근 건물을 지어온 서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흔히 탄광, 무장공비, 산불로 기억하는 시골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만든 신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누구나 오셔서 신앙을 회복하고 삶을 돌아보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더불어 소망했다. 이 아름다운 교회가 지역에 희망을 뿌리며 신앙공동체의 미학을 완성해가기를.

■제주 방주교회

물 위에 떠있는 듯한 건물… 유동룡 건축철학의 진수

하늘이 물속에 담겨 있고, 그 물 위에 교회가 떠 있다. 제주 방주교회의 모습이다. 모진 풍파를 이기며 항해하는 한 척의 배처럼 보인다. 재일 한국인 건축가 유동룡(일본명 이타미 준·1937∼2011)이 설계했다. 2009년 3월 건립된 후 그 이듬해에 한국건축가협회 건축물 대상을 받을 정도로 조형미가 빼어나다.

서귀포 안덕면에 있는 이 교회를 찾았을 때, 유동룡의 건축철학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 고갱이는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외관은 제주의 자연에 스미고, 내부는 그 풍경을 끌어들인다.

유동룡은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 거주하면서도 한국 국적을 지키며 ‘경계인’으로 살았다. 어느 쪽도 아니지만, 모든 쪽을 다 품을 수 있는 생애였기에 그는 하늘과 땅, 바다를 모두 아우르는 시야를 지닐 수 있었다. 노아의 방주 형상을 한 교회의 긴 지붕선 양 끝을 하늘을 향해 추켜올린 것은,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경계인의 심안(心眼)이 이뤄낸 결실이다.

이 교회의 설립 역사 들머리에는 청빈의 목회자인 한경직(영락교회 창립자·1902∼2000) 목사가 있다. 철도 차량을 생산하는 우진산전의 김영창 회장이 한 목사가 생존해 있을 때 부의 사회환원을 약속했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방주교회를 지은 것이다. “초대 교회의 신앙공동체처럼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구원받는 것을 꿈꾼다”는 것이 방주재단 관계자 설명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기도하는 심정이 됐다. 지난 2017년부터 몇 년간 교회 운영방식을 둘러싸고 재단과 담임목사 측이 극심하게 대립했던 것이 떠올라서였다. 하늘빛을 교회로 끌어온 유동룡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런 갈등이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 Tip - 외부인에게 언제 열까

삼척 방주교회 내부는 평일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외부인 방문이 가능하다. 예배를 보는 일요일엔 오후 3시부터 개방한다. 방문 전에 전화(033-573-7950)를 주면 교회 위치와 역사에 관한 안내를 받고, 십자가 만들기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내달 20일에 교회 내 카페를 오픈해 지역 음식과 특산품을 판매한다. 제주 방주교회는 평일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내부를 개방한다.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만 열며, 일요일은 예배 시간을 피해 세 차례(오전 10시 30분∼10시 50분, 낮 12시∼오후 1시 40분, 오후 3∼5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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