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씨앗'과 '꽃가루'로 알아낸 신라 시대 생태환경

이세영 2022. 6.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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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재발견 ⑦ 그림 한 장에 담긴 당시 생활상

(경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유네스코에서 등재한 경주역사유적지구의 한복판에는 신라 천년 왕궁인 월성 유적이 포함돼 있다.

최근의 조사에선 왕궁을 둘러싼 연못인 해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좀처럼 찾기 힘든 귀한 유물이 대거 출토되면서 신라 시대의 면모를 살펴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19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금으로부터 1천600년 전인 5세기 모습을 담은 '월성의 어느 여름날'이라는 그림 한 장을 발표했다. 당시 신라의 왕이 살던 궁궐인 월성 해자의 모습이었다.

현재는 해자의 흔적만 보이는 터로 남아있지만 1천600년 전 그곳은 자줏빛 가시연꽃과 주변의 느티나무 등 평화로운 정취를 간직한 곳이었다.

그림 속 식물은 모두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자연환경을 정밀하게 복원한 것이다.

경주 월성의 유적지 가운데 특히 궁을 둘러싼 해자의 퇴적토에서 씨앗과 꽃가루가 잘 보존된 채 발견돼 정밀 복원이 가능했다.

약 1천600년 전의 씨앗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된 채 썩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연못 바닥 퇴적층 속에 묻힌 채 외부로부터 보호받았기 때문이다.

유적지의 흙에서 옛 식물체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성과 기술이 필요하다. 흙덩어리를 물에 푼 다음 작은 크기의 씨까지 수습될 수 있도록 눈금이 가는 체를 이용하여 선별 작업을 한다. 퇴적물 중의 꽃가루 추출은 알칼리·산성 시약 등을 이용해 꽃가루 이외의 유기물과 무기물을 녹여내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분석 결과, 경주 월성의 신라 궁궐터를 둘러싼 해자에선 가시연꽃과 쌀, 보리, 밀, 콩 등의 곡류, 그리고 복숭아, 자두와 같은 과실류 등 무려 70여 종의 식물 씨앗들이 대거 발견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출토된 것은 가시연꽃의 씨앗.

저수지나 연못에 주로 사는 한해살이 식물로서 여름엔 자주색 꽃을 피우는 수련류다. 신라에선 왕족과 귀족들만 자주색 관복을 입었던 점을 토대로 신라인들은 유독 가시연꽃의 자주색을 귀한 색으로 여긴 것으로 추정된다.

가시연꽃의 씨앗은 왕실 제사를 지낼 때 제사 음식으로 올려졌다. 가시연꽃은 한 개의 열매 안에 100여 개의 많은 씨가 영글어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해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주로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 산지에선 소나무와 참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특히 참나무는 신라인들이 사용하기 좋아하는 나무였는데, 출토된 목제 구조물 2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참나무가 58% 정도로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당시 굴피나무, 밤나무 등이 자란 흔적도 발견됐다.

신라인들이 식물의 껍질 등을 꿰어 장식으로 활용했던 흔적도 발견됐다. 해자 퇴적층에서는 구멍이 뚫려 같이 꿰어서 쓴 것으로 보이는 잣 껍데기들이 여러 개 발견됐다.

1천여 년 전부터 신라인들은 장식용 또는 생활용 등으로 식물을 활용한 것으로 발굴단은 추정하고 있다.

해자에서는 놀랍게도 신라 시절 퇴적된 꽃가루도 발견됐다. 꽃가루를 정밀 분석을 해보니 이 연못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가장 많았고, 또 그 주변엔 소나무, 참나무, 굴피나무, 물푸레나무, 느릅나무 등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2014년부터 경주 월성에서 발굴 조사를 해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씨앗과 꽃가루, 목재 분석 덕분에 무려 1천여 년이 지났지만, 당시 생태 모습을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복원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유적출토 식물 연구는 자연환경뿐 아니라 당시 신라인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유추할 수 있는 귀한 사료로 고고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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