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은 옛말.. 국제 정치에 휘둘리는 스포츠

손우성 기자 2022. 6. 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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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인가 범법자인가…‘WNBA 간판’ 그리너 : 브리트니 그리너(미국)가 지난해 10월 13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파이널 2차전에 출전해 활약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백신 거부’… 3년간 호주 오픈 출전 정지 조코비치 :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가 지난달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테니스 메이저대회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2라운드에서 서브를 넣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윔블던 출전 위해 러시아 국적 버린 자라미제 : 러시아에서 조지아로 국적을 바꿔 윔블던에 출전하는 나텔라 자라미제는 지난달 프랑스오픈 여자 복식에선 1라운드 탈락했다. 자라미제 인스타그램

■ Global Window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사태 촉발로 국제사회의 이합집산이 가속하면서 ‘평화의 상징’으로 전성기를 구가해오던 스포츠마저도 중립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며 급속하게 국제정치 영역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 대표적 사례가 올해 초 개막한 2022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이었다. 미국 등 주요 서방국은 물론, 일본까지 중국 신장(新疆)위구르·티베트 인권 유린과 홍콩 사태 등을 문제 삼아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이른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냉전이 절정이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이후 40여년 만에 “서방과 반(反)서방의 충돌이 재현됐다”(뉴욕타임스)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더해 ‘스포츠의 정치화’는 이제 선수 개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산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경기 외적 요소로 인해 때아닌 수난을 받는 스포츠 스타들이 늘고 있다.

■ 러시아 억류된 美 그리너

올해 2월부터 구금 계속 연장

“우크라 사태 협상에 쓰일 수도“

특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이를 막아서려는 미국의 신경전이 거세지는 가운데 마약 소지 혐의로 러시아에 억류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간판스타 브리트니 그리너(32·미국)의 거취 문제는 양국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미국 “그리너 석방하라” vs 러시아 “그는 인질 아닌 범법자” = 그리너는 WNBA 피닉스 머큐리 소속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서 미국 여자농구 2연패를 이끈 슈퍼스타다. 올스타에만 7차례 선정됐으며, 203㎝의 큰 키에 여자 선수로는 드물게 덩크슛을 꽂는 등 강렬한 플레이로 사랑받았다. 2015년부터 비시즌마다 러시아 리그 UMMC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뛰어온 그는 지난 2월 17일 돌연 모스크바 공항에서 러시아 경찰에 체포됐다. 러시아에선 불법인 대마초 기름이 담긴 전자담배 카트리지를 휴대한 혐의였다.

미국은 반발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3월 6일 “미국인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억류될 때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그리너의 석방을 촉구했다. 미 국가안보회의(NSC)도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리너를 포함해 해외에서 인질로 잡혀 있거나 부당하게 구금된 모든 미국 국민 석방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미 하원도 지난 25일 그리너의 석방을 요구하는 초당적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맞물려 그리너를 사실상 인질로 잡았다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그리너를 인질로 삼고 우크라이나 사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러시아는 그리너의 구금 기간 연장으로 맞불을 놨다. 러시아 법원은 수차례 구금 기간을 늘리더니 14일 또다시 18일간 추가 구금 조처를 내렸다. 이로써 그리너는 다음달 2일까지 러시아에 몸이 묶이게 됐고, 구속 기간은 4개월을 넘기게 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0일 미국 MS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러시아 법을 어겼고, 현재 기소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미국 주장처럼 그는 인질이 아니라 범법자”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리너 사태가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장기화를 예상했다.

■ ‘濠서 퇴짜’세르비아 조코비치

입국불허에 대통령나서 외교전

광물탐사 허가 취소 분쟁까지

◇백신 거부… 3년간 호주오픈 출전 정지당한 조코비치 = 남자프로테니스(ATP) 간판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는 지난 1월 열린 4대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호주오픈에서만 9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지난해까지 대회 3연패를 달성하며 좋은 흐름을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이 발목을 잡았다. 조코비치는 대회 전 두 차례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백신 접종은 거부해왔다. 호주 정부는 “백신 접종자만 입국시키겠다고 지난해 초부터 방침을 밝혔다”며 1월 5일 멜버른 국제공항에 도착한 조코비치의 비자를 취소했다. 조코비치는 호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호주 정부는 이민부 장관 직권으로 그의 입국 비자를 다시 취소했다. 호주 이민부 장관은 “우리 사회의 건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조코비치의 비자를 이민법 규정에 따라 취소한다”고 밝혔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 개막일이었던 1월 17일 고국인 세르비아로 짐을 싸 돌아가야만 했다. 호주는 비자 취소 조처로 추방되면 향후 3년간 입국을 금지하고 있어 조코비치의 호주오픈 출전은 당분간 어려워졌다. 이후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호주를 맹비난하는 등 외교 분쟁으로 비화했다.

부치치 대통령은 “호주는 열흘 동안 홀대로 조코비치에게 굴욕을 줬다”면서 “이는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강조했다. 세르비아 정부가 호주업체의 광물탐사 허가를 취소했다는 호주 일간지 보도까지 나왔다.

조코비치는 오는 8월 미국 뉴욕주에서 열리는 US오픈 참가도 불투명하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올해 열리는 US오픈에 출전하기 위해선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한다”며 “백신 미접종자인 조코비치는 대회 출전이 어렵다”고 보도했다. 조코비치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대회엔 참가하지 않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외신에선 친러 성향의 세르비아와 미국의 미묘한 신경전을 예고했다.

■ ‘러 국민→조지아人’ 자라미제

우크라 사태로 출전 막혀 전향

앙숙인 양국 외교문제 될 수도

◇윔블던 “러시아 선수 출전 금지” 조처에 국적까지 바꾼 자라미제 = 윔블던은 테니스 메이저대회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꼽힌다. 윔블던을 주관하는 올잉글랜드클럽은 올해 대회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했다. 러시아 출신 ATP 세계랭킹 1위 다닐 메드베데프는 이 조처로 윔블던 코트에 나설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국적을 바꿔 대회 출전을 강행한 선수가 있다. 러시아 국적의 나텔라 자라미제(29)가 그 주인공이다.

여자프로테니스(WTA) 세계랭킹 45위에 복식 전문인 자라미제는 러시아 선수들의 윔블던 출전이 금지되자 국적을 조지아로 바꿨다. WTA 홈페이지에도 조지아 국적으로 공식 등록됐다. 앞서 열린 프랑스오픈에선 러시아와 벨라루스 국적 선수들을 국가명·국기·국가 사용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출전을 허용했는데, 자라미제는 중립국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바 있다. 하지만 윔블던에선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출전이 원천 봉쇄됐고, 자라미제는 국적 변경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올잉글랜드클럽은 “선수의 국적은 투어와 국제테니스연맹(ITF)의 업무”라며 “자라미제의 출전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자라미제가 어떻게 조지아 국적을 얻었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와 조지아가 앙숙 중의 앙숙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향후 외교 문제로 비화할 여지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외에도 이란 배구대표팀이 2019년 7월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결선 참가차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한 직후 세관국경보호국에 억류돼 조사를 받아 논란이 된 사례도 있다. 이란 외교부는 “미국이 모든 국가를 공평하게 대할 수 없다면 국제 대회를 개최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미국 정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조처였고 모두 별다른 일 없이 입국했다”고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이란은 미국이 평소 핵 문제 등으로 자신들을 탐탁지 않아 했기 때문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손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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