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는 시작에 불과.. 야당이 집권 보수당을 이기는 법 [권신영의 해리포터 너머의 영국]

권신영 입력 2022. 6. 28.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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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신영의 해리포터 너머의 영국] 영국은 어떻게 기후정의에 다가서고 있나

[권신영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순식간에 '기후 변화'를 삼켰다. 지난해 11월 글래스고 기후회의는 실질적 결과를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2022년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년 남짓 지난 지금, 왠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 올해도 폭염, 가뭄 등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가 들려오지만 석유 등 화석 연료계는 보란 듯 역대 최고 이익을 기록 중이다. 독일은 기후 정책 최선두에 섰지만 러시아 가스에 발목 잡혀 당분간 후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영국 글래스고 과학센터
ⓒ 연합뉴스
 
하지만 전쟁은 기후론자들에게도 작은 기회를 주었다. 내각제 속 야당이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영국 노동당과 녹색당, 그린뉴딜 지지자들은 횡재세(Windfall tax)를 발의, 끝내 관철시켜 유례없는 반사 이익을 얻은 화석 연료계의 이익을 사회로 돌렸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철도 파업에는 기후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에게 철도의 재국유화는 경제 정의와 기후 정의를 동시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낡은 세계는 죽어가고 새로운 세상은 태어나려고 몸부림친다"는 그람시의 지적처럼 전환기는 혼란스럽다. 되돌릴 수 없는 분기점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어떤 것이 죽을지 무엇이 태어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노동과 기후를 결합한 그린 뉴딜이 과연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불씨는 되살렸다.  

횡재세 발의의 주축, 그린 뉴딜 그룹

영국 횡재세는 한국의 법인세 인하 결정이 국제 흐름에 역행한다는 맥락에서 국내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측면에만 국한된 해석으로 입안자들이 목표로 하는 두 가지 정의, 경제와 기후 중 반만 소개한 셈이다. 횡재세는 그린 뉴딜을 전환기의 경제 정책으로 제시하는 이들의 첫 걸음이다.

횡재세 발의를 주도한 이는 노동당 전 전 대표 에드 밀리밴드로, 영국 정계 통틀어 최고의 기후 변화 전문가다. 2008년 탄소 감축을 법으로 의무화시키는 기후 변화법을 최초로 통과시킨 바 있다. 2019년엔 기후 대책의 목표가 "보다 평등하고 번영된 민주주의 사회 건설"에 있다며, 경제 정의와 기후 정의를 결합하는 사고의 전환을 이룬다. 2020년에는 '그린 회복(Green Recovery)' 보고서를 직접 작성, 2021년 9월 노동당이 채택한 "사회주의 그린 뉴딜"의 기본 틀을 세웠다. (UN 사무총장의 살벌한 경고, 영국이 먼저 치고나간 이유 http://omn.kr/1vx1n)
 
 에드 밀리밴드 전 전 노동당 대표
ⓒ 연합뉴스
 
연초 횡재세 법안을 발의한 이후 밀리밴드는 하원에서 집권 보수당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는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지 않았던 전쟁 초기 보수당은 법안을 연거푸 부결시켰다. 하지만 5월 17일, 밀리밴드는 하원에서 상대 토론자인 재무장관 리시 수낙을 경청자로 만들어 버리며 보수당을 돌려 세운다.  

이날 밀리밴드를 측면 지원한 이가 녹색당 전 대표 캐럴라인 루커스다. 2007년 <가디언> 경제편집장 래리 엘리엇이 '그린 뉴딜'이란 새 용어를 만든 후 그린 뉴딜 그룹을 결성했을 때 함께 했던 창립 멤버 9명 중의 하나다. 그는 하원 내 군소 정당을 설득하는 동시에 3월 18일, 리시 수낙 재부무 장관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횡재세를 통과시키라고 압박했다.

루커스는 5월 26일 횡재세가 통과되었을 때 "석유가스 회사들의 어처구니 없는 이익에 부과한 횡재세는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화석 연료가 현재의 생활비 위기와 기후 위기의 중심에 있음을 강조, 횡재세가 "그린 경제 전환에 중요한 탄소세 부과를 위한 길을 깔아야 한다"며 다음 목표가 탄소세에 있음을 시사했다.   

옥스팜의 샘 네이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저소득층을 우선시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것은 옳다"며 "에너지 위기는 화석 연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환기시킨다. 우리는 저렴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형태의 재생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녹색당 전 대표 캐럴라인 루커스는 횡재세가 통과되었을 때 "어처구니없는 석유 가스 회사들의 이익에 부과한 횡재세는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화석 연료가 현재의 생활비 위기와 기후 위기의 중심에 있음을 강조, 횡재세가 "그린 경제 전환에 중요한 탄소세 부과를 위한 길을 깔아야 한다"며 다음 목표가 탄소세에 있음을 시사했다.
ⓒ 연합뉴스/EPA
 
수세 몰린 보수당의 '영국식 뉴딜'

횡재세 발표 다음 날 영국 에너지 산업계는 반발했다. 쉘(Shell)은 "수백만이 에너지 비용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미래를 위한 저탄소 에너지를 위한 투자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며, "(횡재세로) 기후를 위한 투자가 불확실하다"고 발표했다. BP 역시 투자 계획을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재생 에너지 투자안 재고는 보수당의 '영국식 뉴딜'에 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2020년 6월, "영국식 뉴딜"을 선언한 보리스 존슨 총리는 11월 "녹색 산업 혁명을 위한 10가지 계획"을 발표했다. 노동당안과 달리,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동기 부여만 하는 정도로, 시장 주도형이다. 때문에 에너지 산업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난이 중산층까지 퍼지는 지금, 보수당이 에너지 기업들이 쓸어 담는 천문학적 이익을 보장해 주기 어렵다는데 있다. 그렇다고 탄소 중립 목표에서 후퇴할 수도 없다. 중도 우파 싱크탱크인 온워드(Public First for Onward)가 4월 2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수당이 탄소 중립 목표에서 후퇴할 경우 약 130만 명의 보수당 지지자가 이탈할 것으로 예상했다.

6월 23일, BP와 쉘 등 에너지 산업계와 첫 회동을 가진 리시 수낙 장관은 횡재세 적용 시기와 완료 시기 등을 두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전투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철도 파업

이 와중에 철도 노조(RMT, the National Union of Rail, Maritime and Transport Workers Union)가 21, 23, 25일 파업을 단행했다. 1989년 이후 최대 규모의 전국 파업으로 약 4만 명이 참가, 운행의 80%가 멈췄다. 임금 동결과 인원 감축에 대한 반발로, 노조는 적어도 인플레이션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인상과 일자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 철도 노조의 전국 파업 3일째인 23일(현지시간) 다수의 열차가 멈춰선 가운데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역에서 몇몇 여행자들이 플랫폼을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22일 총리 질의 시간에 존슨 총리는 노동당이 영국을 "1970년대로 되돌리려 한다"며 파업의 책임을 노동당에게 돌렸다(노동조합이 노동당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1979년 격렬했던 파업 책임을 노동당에 돌리는 전략으로 총선에서 승리,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의 전략 모방이다.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최근 보수당이 투자 장려 방안으로 금융가들의 보너스 상한제를 없앤 사실을 들고 나섰다. 수십억을 받는 금융계에게는 "보수 인상"의 길을 열어주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인플레이션 하에서 사실상 임금 삭감)시키는 것이 총리의 "새로운 접근법"이냐고 되받아쳤다.

RMT 철도 노조 위원장 믹 린치는 파업에 씌워진 이미지, 즉 '사회 질서를 교란하는 폭력적 이미지'를 벗겨냈다. 그의 페이스북 사진이 1960년대 인형극 <선더버드(Thunderbirds)> 속 악당 후즈(the Hoods)인 것을 지적하며 그를 세계를 전복하려는 악당 혹은 테러리스트로 몰고 가려는 방송인과의 인터뷰에서 "옛날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비닐로 만든 인형을 트집 잡는 게 당신 수준이냐?"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첫 질문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마르크시스트냐"라는 질문을 받자 "헛소리"라고 한 뒤, 차분하게 자신은 "조합원들이 선출한 노조 위원장"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파업의 목표를 차분히 간결하게 전했다.  

파업을 보다 자극적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다분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보인 침착성, 명료한 화법, 집중력은 그를 순식간에 스타로 만들었다. <스펙테이터(Spectator>의 칼럼니스트 마크 솔로몬은 "믹 린치가 압도적이었고, 언론과 정치인을 묵사발로 만들었다"며 "언론 다루는 방법이 일류(masterclass)"라고 칭찬했다.

철도, 경제 정의와 기후 정의의 교차점

<가디언>은 23일 목요일 파업에 기후 단체들이 등장, 파업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25일 브리스틀에서 400여 명이 모여 철도 파업 지지와 기후 정의를 외치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 중 인터뷰에 응한 시민운동가(Just Stop Oil)는 "생활비 위기와 기후 위기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철도는 이들에게 비행기와 자동차의 대안이다. 교통은 영국 탄소 배출의 27%를 차지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차와 화물 트럭에서 나온다. 또한 비행기는 철도에 비해 탄소 배출이 6-7배에 달하기 때문에 국내선을 줄이고 철도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자마자 차이는 있지만, 밀리밴드는 철도와 에너지만큼은 다시 국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원래 국영이었지만 마거릿 대처 총리가 민영화시켰다).

파업에 참가한 단체 중 눈에 띄는 단체는 'We All Want to Just Stop Oil'이다. 세 개의 단체 'Fuel Poverty Action', 'Just Stop Oil', '평화와 정의 프로젝트'(Peace and Justice Project) 연합체다. 첫 두 단체는 기후, 세 번째 단체는 노동에 방점이 찍혀 있다. 평화와 정의 프로젝트는 노동당 전 대표 제러미 코빈이 주도하고 있으며, 놈 촘스키도 이름을 올렸다.
 
 파업에 참가한 단체 중 눈에 띄는 단체는 'We All Want to Just Stop Oil'이다. 세 개의 단체?'Fuel Poverty Action', 'Just Stop Oil', '평화와 정의 프로젝트'(Peace and Justice Project) 연합체다. 첫 두 단체는 기후, 세 번째 단체는 노동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사진은 juststopoil 홈페이지.
ⓒ juststopoil.org
 
이 연합체는 환경단체, 노조,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7월 23일 대규모 집회를 준비 중이다. 목표는 생활비 위기와 기후 위기의 동시 해결이다. 구체적 방안으로, 에너지 회사에 세금을 부과할 것, 저렴하고 깨끗한 공공 교통을 위한 투자, 난방비와 탄소배출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개인 주택의 단열 보강을 요구한다.  

그린 뉴딜은 죽지 않았다. 생방송되는 하원 정책 토론에서 보수당을 압도하며 횡재세를 관철시켰던 노동당 전 전 대표, 그를 측면 지원하는 녹색당, 철도 파업을 통해 노동과 기후를 결합시키고 의회 밖에서 시민 사회를 설득하는 노동당 전 대표가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은 건 노동당 현 대표가 2023년 총선에서 승부수로 띄울 수 있는가다.  

"전 세계적 고금리 정책에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한국 대통령의 말이 있었다. 없는 건 방도가 아니다. 없는 건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꿈, 작은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 기회를 살릴 아이디어,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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