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위 美 대법원, 동성결혼·피임약도 금지하나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2. 6. 2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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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대법·공화당이 美를 건국의 아버지 시대로 회귀시켜”
미 언론들 “시기의 문제, 대법원 다른 권리들도 폐기할 듯”
공화당 동성혼 금지 등 추진할까, 일각선 ‘악재’ 분석도
민주당 “중간선거 핵심 쟁점 삼아야”

미 연방대법원이 임신 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가운데 향후에는 동성 결혼, 피임약 판매·구매 등의 권리를 규정한 기존 판례들도 뒤집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인 미 대법원이 ‘동성애 금지’ 등 보수 진영이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들을 본격 추진할 경우, 미국 사회가 격렬한 이념 갈등을 겪으면서 11월 중간선거를 넘어 2024년 대선까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제니퍼 루빈은 “대법원과 공화당이 21세기 현대 미국을 과거 ‘건국의 아버지들’ 시대로 회귀시키길 원하고 있다”며 “많은 가치와 권리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보수 대법관 중에서 가장 ‘강성’으로 평가되는 토머스 클래런스 대법관은 이번 판결 보충 입장을 내고 “앞으로 우리는 그리스월드, 로런스, 오버게펠을 포함한 기존 판례들을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클래런스 대법관은 이들 판례를 ‘오류(error)’라고 지칭하면서 “수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지난 1965년 그리스월드 대 코네티컷 판결은 부부의 피임약 사용을 인정했고, 2003년 로런스 대 텍사스 판결은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할 수 없다고 했다. 2015년 오버게펠 대 호지스 판결은 동성혼 권리를 인정했다. 이런 판결들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새뮤얼 얼리토, 브렛 캐버노 등 동료 보수 대법관들은 “(이번 판결이) 낙태와 관련 없는 다른 판례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고 했다. 클래런스 대법관 의견에 거리를 두는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다수의 미 언론들은 “시기의 문제일 뿐 대법원이 다른 권리들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잇따라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는 임신중단권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수정헌법 14조에 근거해 대법원이 권리를 인정했던 동성 결혼이나 피임, 인종 간 결혼 등까지 위헌(違憲)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공화당이 민주당과의 ‘문화 전쟁(cultural war)’ 전선(戰線)을 본격 확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지층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보수 진영의 투사’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차기 주자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난 3월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등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시키는 ‘돈 세이 게이(Don’t Say Gay)’ 법을 발효시켰다. 플로리다의 대표 기업 디즈니가 이에 반발하자 디즈니에 세제 혜택을 박탈하겠다고 했다. 이번 판결 직후 ‘전국적 낙태 금지’ 주장을 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동성혼 등에 반대 입장을 내왔다.

다만 공화당 내에선 속도조절론도 나온다. 낙태에 이어 동성 결혼 금지 등을 급격하게 추진하는 것은 중간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익명의 공화당 관계자를 인용해 “40년 넘게 정착됐던 법(낙태 허용)의 변경은 사회적 경악을 일으킬 것”이라며 “공화당은 낙태 권리 폐기 판결이 없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의석 몇 개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공화당의 ‘공격 타깃’을 경제가 아닌 다른 이슈로 옮기는 것은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미 CBS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와 함께 지난 24∼25일 성인 159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59%가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의식한 듯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피임, 동성혼 금지 등을 시사한 클래런스 대법관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이번 판결은 낙태 외엔 다른 사안과 관련 없다고 한) 얼리토 대법관의 발언이 적절했다고 본다”고 했다. 공화당 지도부들도 현재로선 동성혼, 피임 등 이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민주당은 낙태 권리 폐기 판결을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당일인 지난 24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사생활, 자유, 평등에 대한 권리는 모두 (11월 중간선거) 투표 용지에 있다”고 했다. WP는 “특히 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교외 지역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자극할 호재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CBS·유고브 여론조사에서 여성의 67%가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해 남성(51%)보다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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