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4] 인간의 욕망이 부르는 폭력과 혼돈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6.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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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 타워, 2015년, 3채널 HD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6분 55초,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2022,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빨간 펠트 천으로 뒤덮인 계단식 단상에 같은 빨간색 안락의자가 놓여 있다. 놀랍도록 편안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시야를 가득 채운 고화질 모니터 세 대에서 긴박하게 펼쳐지는 영상에 몰입하면 잠시나마 세상과 차단된 채 가상 현실로 진입하게 된다. 인터넷 시대의 일상을 장악한 디지털 이미지와 데이터의 본질에 대한 비평으로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평론가로 손꼽히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1966년생)의 아시아 첫 개인전 중 한 작품이다.

‘타워’의 동영상은 ‘3D 에이스 스튜디오’라는 우크라이나 영상 회사가 지난 2008년에 출시한 컴퓨터 게임 ‘마천루: 혼돈을 향한 계단’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았다. ‘마천루’는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이 건설한 바벨탑을 말한다. 게임은 20세기에 재건한 바벨탑 안에서 주인공이 층층이 만나는 괴수들을 처치하는 1인칭 슈팅 게임이다. 실제로 1980년대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고대 왕국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며 바벨탑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게임 배경은 바로 그 후세인이 못다 세운 마천루다. ‘타워’의 내레이션은 ‘3D 에이스 스튜디오’의 개발자가 맡았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원래 러시아 군수업의 하도급 업체였다가 이후 부동산 개발을 위한 3D 모델링에 주력했다. 영상에서 그는 ‘하르키우는 러시아에서 탱크로 한 시간 거리’라고 말하는데, 당시에는 누구도 실제로 러시아가 탱크로 진격할 줄 몰랐을 것이다.

슈타이얼은 이처럼 ‘마천루’가 상징하는 인간의 욕망이 폭력과 혼돈을 부르는 잔혹사를 세련된 영상에 담았다. 그중 가장 잔혹한 건 지금 우리가 편한 의자에 앉아 게임하듯 실제 전쟁을 지켜보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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