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한국인, 마음의 변화를 읽어라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2. 6.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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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길게 잡으면 10년, 짧으면 5년? 한국인의 마음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아마도 근원적 가치의 상실과 관련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들은 이런 것들이다. 예를 들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혐오 같은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초창기부터 논쟁적이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따라야 할 규범’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86세대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옥죄려고 하는 전체주의적 경향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 ‘자유’가 35번이나 등장하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개혁 드라이브는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틀에 맞춰 사람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처벌하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생각 경찰(thought police)’의 행태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제는 생각도 마음대로 못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각만이 처벌받지 않는 생각이다.” 모두는 아니라 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 검찰공화국이 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야당의 외침은 적어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권력을 연장해달라는 협박으로 자동번역되고,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은 강력범죄 수사일 뿐이라는 법무부 장관의 간단명료한 한마디 앞에 맥을 추지 못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적 올바름의 핵심인 소수집단에 대한 포용은 거의 완벽하게 부정당한다. 86세대 남성에게 페미니즘은 민주화운동에 비해 우선순위에서는 밀리지만 그래도 공감을 표시하는 정도는 해줘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위선적이지만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제 한국의 페미니즘은 일대 위기에 빠져 있다. 대선 과정에서 페미니즘은 거침없이 공격당했고, 새 정부의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들 중에 성별을 막론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은 없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이럴진대 그보다 더 작은 소수집단은 말할 것도 없다.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노인에 대한 혐오를 말리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또 다른 징후는 팬덤 정치이다.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개딸과 양아들과 수박 논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혹은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거대 야당 안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연예인 팬덤이나 스포츠 팬덤과 마찬가지로 정치인 팬덤도 언제든 훌리건으로 변할 수 있다. 5년 전 문자폭탄을 ‘양념’이라고 했던 전직 대통령은 이제 본인의 딸이 분노했던 것처럼 양산 자택에서 밤낮없이 이어지는 언어의 폭력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보수든 진보든 팬덤이라 불리는 이 새로운 정치 고관여층은 본래 정치가 추구해야 할 국익이나 공공성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정치인이 이겼느냐 졌느냐, 적을 거꾸러뜨릴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이제 정치는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사적으로 이겨야 하는 결투가 되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평범한 사람도 광범위한 메시지 발신을 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그들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얼마든지 다수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팬덤 정치는 그 대상이 되는 정치인에게는 위험한 유혹이다. 팬덤에 올라타면 최저선은 언제나 보장된다. 하지만 극단적인 팬이 주류가 될 수는 없기에 대선 승리는 불가능하다. 혹시라도 그렇게 해서 진짜로 정권을 잡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운 좋으면 트럼프요, 운 없으면 히틀러를 보게 될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인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과거에 합의된 줄 알았던 근원적 가치가 사실은 부정당했거나 혹은 원래부터 부재했음이 드러난 마당에 민주주의와 인권과 공정과 포용과 국리민복을 어떤 가치 위에 쌓아나갈 것인지를 빨리 찾아야 한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여성가족부 폐지는 그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상실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일 뿐이었다. 지금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부정당하고 있는 86세대 가치를 그나마 끝까지 활용해보려는 점포정리 세일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가치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자의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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