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호랑이 주눅들게 한 큰 나무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2022. 6.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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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충남 금산군의 요광리를 둘러싼 서대산 기슭에도 호랑이가 살았던 모양이다. 숲속의 호랑이가 이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중에 낮잠 자는 농부를 찾고 다가서려 했다.

그런데 사람 곁에 호랑이가 대적하기에는 너무나 큰 ‘무엇’이 있었다.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은 호랑이는 하릴없이 숲으로 돌아갔다. 백수의 제왕을 주눅 들게 한 건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였다.

천년 전부터 이 자리에서 살아온 나무는 율곡 이이의 글에도 등장할 만큼 널리 알려진 나무다. 높이 24m, 줄기둘레 13m에 이르는 이 나무는 긴 세월 동안 굵은 줄기 안쪽이 썩어 외과수술 처리로 보존했다.

수려한 생김새를 갖췄지만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불균형하게 보인다. 큰 나뭇가지가 찢겨나가서다. 100년 전에 큰 바람으로 부러진 남쪽의 가지는 길이가 30m에 이를 만큼 컸는데 이 가지로 마을 사람 모두가 3년 동안 쓸 밥상을 만들었다. 또 80년 전에 찢겨나간 40m 길이의 동북쪽 가지로는 관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나눠 가졌다고 한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500년쯤 전부터 ‘행정(杏亭) 은행나무’라고도 불려왔다. 마을 사람이 나무 곁에 정자를 짓고,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의 ‘행정’이라 한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그때의 행정은 주저앉았지만, 새로 아담한 정자를 놓고 ‘행정헌(杏亭軒)’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밤에 어린아이가 이 나무 그늘에 한 시간 정도 홀로 머무르면 영민해지고, 나무에 치성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정월 초사흗날에 나무 앞에서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린다.

호랑이 먹이가 될 뻔했던 농부를 지켜주었듯이 마을의 은행나무는 오래도록 사람살이의 평안을 지켜주는 큰 나무로 굳건히 살아남았다.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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