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칼럼] 고등학생 K군의 첫 선거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2. 6.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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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이름 모를 고등학생 K군으로부터 e메일을 받고 그와 화상통화까지 하게 되었다. 오늘 지면에는 K군의 양해를 얻어 우리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잠깐 소개할까 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고등학교 3학년인 K군은 올해 만 18세, 이번 양대 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할 기회를 얻은 ‘신입 유권자’다. 정치학 전공 지망생으로서 첫 투표를 하게 될 부푼 기대에 열심히 대선 후보자들에 대해 찾아보고 공보물도 자세히 읽어본 후, 나름의 지지후보를 정했다고 한다. 지지하는 후보를 선출하는 정당의 선거인단에도 등록을 해서 참여했다고 하니 아마 본격적인 ‘정치 덕후’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K군이 선거 관련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 곳은 유튜브 댓글난이다.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공부나 하라”는 핀잔을 듣기 쉽상일 터이니 섣불리 시도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선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일선 교육현장의 선생님들은 너무나 잘 아실 것이다. 수업시간에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그가 선거 관련 정보를 얻고 토론 아닌 토론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상은 온라인에 널려 있는 익명의 상대방들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의 선거법이 18세로 선거연령을 낮춘 것은 2년 전이었고, 마침 올 초 정당법 개정을 통해 정당 가입 연령을 16세로 낮추기까지 하였다. 그 결정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우리는 이들을 정치적 성인(成人)으로, 온전한 공민권을 부여받은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K군이 대통령 선거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하고 투표소를 나오면서 느꼈다던 알 수 없는 뭉클함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비로소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대견함, 우리 공동체의 설계도에 깨알 같은 한 점을 보탰다는 성취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정치에 대한 기대와 불가피한 책임감. 그리고 이 모든 말로서 표현할 길 없는 ‘뭉클함’을 우리의 수많은 젊은 유권자들이 처음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관위 조사에 의하면 투표권 연령이 18세로 처음 조정된 지난 총선에서 18, 19세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20대 투표율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번 대선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성세대로서 우리가, 나아가 학교에서 정치학과 선거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내가 이들을 위해 어떤 배려를 해주었는지 의문이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새롭게 공민권을 부여받은 이들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우연찮게도 2022년 수능부터는 사회탐구 과목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정치와 법’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소수에 불과하다. 이미 효율적인 입시공동체로 거듭난 우리의 가정 또한 더 이상 전통적인 ‘정치사회화’의 책무를 맡을 수 없게 된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K군이 가장 답답해했던 것은 제대로 된 선거나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온라인 게시판이나 SNS, 유튜브의 제한된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미래의 성장을 유튜브 알고리즘에게 ‘외주’한 셈이다.

이러한 공간들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말이 안 될망정 뚜렷한 주장들이 있고, 피튀기는 논쟁이 치열하며, 무엇보다도 ‘정치와 법’ 과목이 제공하지 못하는 생생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존중과 관용과 설득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름 모를 익명의 타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보고, 나의 생각과 나를 드러내기에는 그곳은 컴퓨터만 덮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타인이 싫건 좋건 나와 같은 정치적 공동체에서 부대끼며 평생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불완전하다는 사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개인들을 성장시키는 유일한 정치체제라는 사실을 처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곳은 결코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 투표소에서 K군이 느꼈다던 뭉클함은 유감스럽게도 지방선거로 이어지지 못했다. 표를 얻기 위한 이대남이니 청춘 공약이니 하는 빈말들이 슈퍼챗을 노리는 유튜버들의 고성과 무엇이 다르냐는 K군의 물음. 그 물음에 우리 기성세대들은 답하지 못했고, K군은 결국 지난 지방선거에서 기권하였다. 선거에 대한 평가가 승패요인 분석에 머무르고, 정말 우리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유권자들을 성장시키는지를 자문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된’ 20대로 자랄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20대 이하 유권자의 투표율은 30%를 약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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