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다시 한번 부릉부릉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2022. 6. 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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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전을 못 한다. 면허는 1996년에 땄다. 군대 때문이었다. 별 특기가 없으니 운전병으로라도 빠질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면허를 땄다. 훈련소에 도착하자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운전면허를 땄다. 물론 나는 보충 훈련을 받을 정도로 체력이 약했으므로 모두가 두려워하던 땅개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 결국 행정병이 됐다. 한국 군대는 아주 가끔 탁월한 선택을 한다.

차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한 건 얼마 전부터다. 신분 증명용으로나 사용하던 운전면허증을 보면서 약간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편리해 굳이 운전을 할 필요가 없는 도시다. 하지만 예순이 넘어서도 아픈 몸을 붙들고 병원으로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나이가 들면 오래 걷는 것이 힘들어 데이트도 체력 훈련이 된다.

차를 사려고 보니 모든 브랜드가 전기차를 구입할 때라고 외치고 있었다. 전기차가 미래라는 카피도 넘쳐났다. 볼보의 카피는 가히 시대적이었다. “기후변화야말로 최상의 안전 테스트입니다”. 모든 차는 전기차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차를 흉내 낼 때 “부릉부릉”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날은 결국 올 것이다. 다만 나는 내연기관의 기름내 나는 박동을 운전석에서 느껴본 적이 없다. 그걸 간절히 느껴보고 싶어서 내연기관 차를 사는 건 기후변화 시대를 역행하는 짓일까.

욕망과 소비 사이에 우리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계를 하나 덧붙였다. 이제 소비는 윤리적이어야 한다. 모피를 입는 것은 더는 멋진 일이 아니다. 내연기관 차를 모는 것도 더는 멋지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미래가 오기 전에 재빨리 내연기관 차를 구입할까 고민 중이다. 대신 담배를 끊고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는 것으로 기후변화에 미치는 내 악한 영향력의 균형을 맞추면 어떨까 싶다. 다만 거시적 윤리 앞에서 기어이 미시적 욕망을 택하겠다는 이 낡은 선언이 제발 그레타 툰베리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논쟁에서 이길 자신이 조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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