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수조원대 전력기금, 얼마나 더 쌓을 건가

김승범 사회정책부 차장 2022. 6. 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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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쓰면 내야 하는 ‘준조세’ 2029년 10조원 넘어설 전망
16년간 그대로인 부담률 낮춰 전기료 인상 충격 완화해야

관리비 고지서에 전기요금 청구액만 표시되는 아파트 주민들은 그런 게 포함됐는지도 잘 모르는 채 납부하는 항목이 하나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이다. 세부 항목이 나온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더라도 전력기금은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고지서에 찍힌 청구액은 엄밀히 말해서 사용자가 쓴 전력량에 부과하는 전기요금과 다르다. 전기 요금의 10%와 3.7%를 각각 부가가치세와 전력기금으로 매기는데 이 둘을 전기 요금에 더한 게 청구액이다. 부가가치세는 재화나 서비스 가격에 일률적으로 붙는다. 전력기금은 그런 세금은 아니지만 전기를 쓰는 국민이라면 부담해야 하는 ‘준조세’다. 전력산업의 지속적 발전과 기반 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2001년 생겼다.

3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가 발표되는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들이 줄지어 설치돼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방송에 출연해 "조만간 적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2.6.27 /연합뉴스

전력기금은 거둬들인 돈에 비해 실제 사업비 지출이 적어 지난해까지 5조원 넘게 쌓였다. 올해는 더 불어날 전망이다. 전기 요금이 오르면 국민들이 내는 전력기금도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4월에 전기 요금을 kWh당 6.9원 올렸고 10월에 4.9원 추가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 3분기에도 5원 올리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한다며 값싼 원전 비중을 낮추고 비싼 태양광·풍력과 LNG(액화천연가스)를 늘리면서 한국전력의 적자는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최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기 생산 원가 부담까지 더해졌다. 전기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물가 상승으로 힘겨워하는 국민과 원가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민·기업이 받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차원에서 전력기금 요율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5년 4.6%에서 3.7%로 낮춘 요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전력기금 규모가 2029년 1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감사원은 2019년 “여유 자금이 과도하게 누적되는 전력기금의 부담금 요율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산업부에 통보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요율을 2%로 낮출 경우 당장 이번 여름철 냉방으로 전기를 많이 써도 3분기 전기 요금 인상으로 늘어나는 요금액이 거의 상쇄된다. 또 국민과 기업의 연간 전력기금 납부 부담은 총 1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전력기금은 한전이 편의상 전기 요금에 붙여 징수만 할 뿐, 실제 운용 주체는 정부다. 전력기금은 한전 자체 수입이 아니기 때문에 덜 걷힌다고 해서 한전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요율을 낮추면 전력기금 수입이 줄어들겠지만,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면 만회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문 정부는 전력기금을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곳에 ‘쌈짓돈’처럼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원래 전력기금의 사용처는 전력 안전 관리나 전문 인력 양성, 전력 산업의 해외 진출 지원 등으로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문 정부는 지난해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바꿔 탈원전 정책 손실 비용을 보전하는 데 쓸 수 있게 했다. 대통령 공약이라며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탈원전을 밀어붙여 생긴 손실을 감시가 덜한 전력기금을 끌어다 메워주기로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에도 전력기금 투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전공대 설립에는 1조6000억원이 들어가는데 그중 상당 액수가 전력기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제도를 강화해 국민이 낸 전력기금을 정부가 입맛대로 쓰지 못하도록 하고 본래 취지에 맞는 곳에만 활용하면 기금이 바닥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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