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7] 달까지 가자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2022. 6. 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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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직업, 성별, 나이,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눴다. 원자력발전, 여성가족부 존폐, 정년 연장처럼 의견이 갈리는 논쟁적 주제가 나오면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 때도, 이 얘기만 나오면 다시 분위기가 환해졌다. 마법 같은 이 주제는 바로 누리호의 성공이었다. 누리호 성공을 둘러싸고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갈등도, 성별 갈등도, 세대 갈등도, 떨어지는 주식에 대한 걱정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잠깐 잊어버린 것 같았다.

과학기술학(STS)에서는 ‘사회 기술적 상상(sociotechnical imaginaries)’이라는 개념을 쓴다. 많은 이가 공유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이 만드는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을 말한다. 한 나라 국민 대다수가 이런 상상을 공유하면 민족적 상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1960년대 이후 기술을 발전시켜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사회 기술적 상상은 국민 대다수가 공유한 꿈이었다.

그런데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공유하는 상상이 없다. ‘기술 입국’이라는 상상은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출산율 최하위, 자살률 1위의 살기 힘든 나라를 안겨주었다. 지금 우리는 남-여, 청년-노인, 보수-진보, 서울-지역, 찬핵-탈핵으로 나뉜 채 서로를 비난하면서 각자도생하고 있다. 더는 함께 꿈을 꾸지도, 함께 미래를 상상하지도 않는다.

우주 탐사는 원래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낳은 자식이다. 그렇지만 자식이 부모를 그대로 닮으라는 법은 없다. ‘기술 입국’이라는 사회 기술적 상상이 무력해진 우리에게, 우주 탐사는 새로운 사회 기술적 상상이 될 수 있다.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주의적 기획이 아니라, 우주에서 바라본 작고 푸른 점 같은 지구에서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 때문에 아웅다웅하는 거 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공유하자는 꿈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타인·환경과 이루는 공생적 관계가 충만한 더 멋진 미래를 만들어보자는 상상이다.

8월에는 달 탐사선 ‘다누리’호를 발사한다. 우주로 하나 되는 상상. 그래, 이번 누리호의 성공을 이어서 달까지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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