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11]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이유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6. 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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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질문에 “감정이나 생각은 무 자르듯 마음먹은 대로 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예를 들자면 업무에 몰입해 ‘이번 기획안이 좋은 평가를 받을까?’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한 상태에서 퇴근 시간이 되었다고 갑자기 ‘이제 일 생각은 다 잊고 내 삶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급전환하도록 마음이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면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주간에 업무 몰입이나 여러 걱정으로 올라간 뇌의 각성도가 밤에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업무 시간이 끝났는데 뇌와 마음은 계속 야근하고 있는 셈이다.

일과 삶의 경계가 마음대로 잘 나눠지지 않다 보니 여러 노력을 시도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일터와 쉬는 공간(집)의 물리적 거리를 늘리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회사 근처에 집을 구했는데, 주말에도 계속 업무 공간 안에 있는 답답한 느낌이 들어 회사에서 거리가 먼 곳으로 다시 이사를 갔다는 경우도 있다. 물리적 거리가 증가하면 마음의 거리도 어느 정도는 같이 멀어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래서 마음이 지칠수록 먼 곳으로 여행을 가고픈 욕구가 증가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 한산했던 인천공항이 지금은 주차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어디로 떠나고 싶으냐’는 질문을 드리면 해외는 유럽, 국내는 제주도란 답이 많다. 일터와 물리적 거리가 확보된 장소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지구를 떠나고 싶다’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답변하는 분들도 있다. 마음이 지친 번아웃이 강하게 찾아와 현실에 대한 회피 감정이 커진 경우다.

내 마음 컨디션이 괜찮은 상황이라면 먼 곳으로의 여행은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이 지친 경우에 회피 감정에 이끌려 먼 여행을 가면 긴 비행 시간에 지치고, 다른 나라의 이국적 매력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번아웃인 경우엔 자신이 익숙한 힐링을 할 수 있는 가까운 곳으로의 휴가를 권한다. 예를 들어, 음악과 자전거로 마음이 회복된 기억이 있다면 그런 활동 중심의 국내 휴가를 계획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일년에 한 번 멋진 휴가도 중요하지만, 업무 후 30분이라도 매일 휴식 시간을 가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하는 전략보다는 퇴근 후 일 생각이 나더라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나만의 휴식 활동에 몰입하는 것이 삶을 즐기는 효과적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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