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반도체가 보여준 대학교육의 민낯

2022. 6. 2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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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최강국 불구 우수인력 부족
대학들 인적·물적 자원 못 갖춰
국가·민간 최소한의 투자 안 한 탓
고등인력 양성에 기술경쟁력 달려

이미 알아차렸어야 했다. 80세의 미국 대통령이 2박이라는 짧은 한국 방문 일정에 굳이 삼성전자 공장에 들른 건 시간이 남거나 삼성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세상의 질서가 변했고, 세상을 지배해야 하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에 디지털 지원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반도체가 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고 있다. 사람의 교류가 제한되고 굳건했던 세계화 시스템이 삐걱대기 시작하며 우리의 삶은 피폐해졌다. 많은 사람은 직장을 잃고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고난을 겪고 있다. 특히 세계화를 통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던 미국의 피해는 막대했다. 그러자 미국은 신속히 동맹을 중심으로 새로운 글로벌 가치 사슬을 구축하며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디지털 혁명 시대의 경제 지배권을 지키는 데 반도체는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초연결 시대에서 아무리 데이터가 중요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한다고 하더라도 산업의 기반인 반도체의 도움 없이 디지털 세계의 재편은 불가능하다. 산업혁명 시대와 비교하자면 반도체는 철광석이나 다름없다. 반도체만으로 미래 기술시대를 선도할 순 없지만, 반도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반도체가 중요하기에 미국은 다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위와 3위 기업을 보유한 반도체 최강국이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도 20% 수준이다. 범세계적 디지털 전환기에 한국 반도체는 필수 불가결한 재료이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상품을 넘어 국가의 위상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반도체는 2021년 수출액 가운데 20%에 달한다. 지정학적으로 수출을 해야만 국가 경제가 유지되는 대한민국이기에 반도체는 태극전사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고급인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방위적 규제 혁파를 추진 중이다.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표현은 1970년대 개발시대를 연상하게 하지만 우수 인력의 확보가 앞으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는 출발점이기에 대통령의 결단은 대단히 시의적절하다.

반도체의 경쟁력은 결국 기술이다. 우수한 인력들이 쉼 없이 도전하고 마음껏 일할 수 있어야 그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사수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반도체 분야에서 일할 우수 인력이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는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분석에 따르면 1년에 최고 3000명 수준의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배출되는 인력도 세계 수준의 기술 현장에 바로 투입되기에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 왜 세계 최고의 회사가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해도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가? 바로 대한민국의 대학이 인력을 양성할 인적·물적 자원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교육열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경쟁력이 낮다고 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발표된 세계 대학 랭킹에서 100위권 안에 드는 대한민국 대학의 숫자는 5~6개에 불과하다. 경제규모 세계 10위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현황이다. 이러한 수준의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력을 기반으로 세계 수준의 반도체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어찌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왜 우리 대학의 경쟁력은 이렇게 낮은가? 국가와 민간이 최소한의 투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은 2012년 1440조원에서 2021년 2071조원으로 43% 증가했는데 등록금은 여전히 동결된 채 대학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국가장학금 4조원이 포함된 12조원 규모의 고등교육 예산은 대형 사립대 20여개 예산의 합에 불과하다. 산학협력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76개 대학에 3025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기초 설비인 전자현미경 하나가 몇십억원 수준인데 이 예산으로 제대로 된 산학협력을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정부지원금을 1년에 5000여억원이나 받는 서울대도 겨우 세계 30위권이다.

비단 반도체뿐이겠는가. 2차전지, 디스플레이, 모빌리티 등 우리가 보유한 세계 수준의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로 자국중심주의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중국을 중심으로 기술의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지금의 기술 경쟁력을 견인해 왔던 노력이 10이라면 앞으로 쏟아야 할 노력은 100이어도 모자라다. 대학이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면 기술강국에서 한순간에 밀려나게 된다.

교육부는 그 역할을 재정립할 시점을 맞이했다. 대학 간 균형발전도 이뤄야 하며 대학입시의 공정성도 확보해야 한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도 세우면야 좋다. 그렇지만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교육부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술 경쟁력 확보에 이바지하는 고등인력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대학의 성장은 곧 국가의 성장임을 깨닫고 경쟁력 있는 대학에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계 1위 회사는 세계 1위 대학의 인재가 있어야 그 위치를 지킬 수 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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