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 선수들의 파이팅이 주는 깨우침..자신의 재능과 기회를 허비하지 말라[선동열의 야구, 이야기]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 2022. 6. 2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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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프로'가 가진 것, 가져야 할 것

지난 1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제13회 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가 막을 내렸다. 이날 결승전에서 고양 엔젤스가 안산 윌로우즈를 이겨 우승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열리지 못했던 대회가 성료돼 대회장으로서 참 감사하고 뿌듯하다.

‘천일 동안 참았던 소리 없는 파이팅’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대회였다. 선수들은 소리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지만 나름의 언어로 소통했다. 그들의 언어는 열정 그리고 질서다.

농아(청각·언어장애인) 선수들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한정돼 있다. 그래도 야구를 하겠다는 열정은 감동적일 만큼 대단하다. 10년 넘게 이 대회를 운영하면서도 볼 때마다 가슴이 새삼 뜨거워진다.

그들의 플레이에는 질서가 있다. 즉각적이고 정확한 소통이 어려운 대신 그들은 동료와 상대를 더 배려한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농아 선수들에게는 프로야구가 열리는 구장에 섰다는 것 자체가 승리다. 가족과 팬, 후원사와 취재진 앞에서 뛰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그들의 환한 웃음을 보며 대회를 후원해준 최윤 OK금융그룹 회장과 KT위즈 구단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8일 열린 제13회 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우승한 고양 엔젤스에 시상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OK금융 제공

농아인야구대회를 보며 프로야구를 다시 생각했다. KBO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좁은 관문을 통과했다. 고교 졸업 선수 중 프로 지명을 받는 선수는 10%가 되지 않는다. 그중 1군에서 뛰게 되는 선수는 더 적다.

얼마나 대단한 재능인가. 얼마나 고마운 기회인가. 그러나 많은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족한 재능을 탓하고 남의 재능을 탐한다. 나도 그랬다.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한 몸을 물려받았는데도 손가락이 짧아 불만이었다. 손이 큰 이강철(KT 감독), 정민철(한화 단장) 같은 후배를 부러워했다. 손가락이 길면 포크볼이나 체인지업을 잘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깨달았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은 소모적일 뿐이다. 가진 재능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 시절 나는 다양한 구종을 던지지 못했지만, 슬라이더의 궤적과 속도를 달리해 여러 변화구를 쓰는 효과를 냈다. 내 독특한, 그래서 누구도 따라하지 않은 슬라이더 그립 덕분이었다. 그것은 뭉툭한 내 손가락에 딱 맞는 투구법이었다.

타인의 재능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지도자가 됐을 때 나는 40대였다. 당시 프로야구 선수들은 동생뻘이었다. 그들의 재능과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단점을 조금만 보완하면 더 잘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나이가 더 들어 깨달았다.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선수는 끊임없이 보완점을 찾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야구와 인생을 먼저 경험한 선배가 후배를 잘 다독이고 자신감을 북돋워줘야 한다. 선수들은 충분한 재능을 가졌다. 모두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다. 아들뻘의 선수들을 마주하게 되니 그것이 보였다.

지난해와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KT·두산·LG 선수들을 꽤 많이 만났다. 더 잘하고자 하는 선수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캠프 기간과 달리 시즌이 시작되면 승패가 나뉜다. 선수들은 예민하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사고도 난다.

농아 선수들의 ‘소리 없는 파이팅’을 듣고나니, 다시 강조하고 싶다. 프로 무대에 있는 선수는 모두 충분한 재능을 타고났다. 더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 재능과 기회를 허비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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