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주기 앱 지우자" 출산 선택권 뺏기자 빠르게 퍼지는 공포
여성·의사 “범죄 피의자 될라”
사용자 익명화 ‘흔적 없애기’
임신중단 약물 문의 4배 늘고
피임·동성혼 규제될까 ‘불안’
미 연방대법원이 반세기 가까이 유지돼온 임신중단권 보장 판례를 뒤집으면서 미국 여성들 사이에선 공포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기된 24일(현지시간) 미국 트위터에는 “생리주기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당장 지우라”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포털사이트 검색, 전자상거래 등을 통해 웹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일상이 된 사회에선 생리주기 관리 앱에 기록한 데이터가 이들을 임신중단 피의자로 기소하기 위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니얼 시트론 버지니아대 법학교수는 CNN에 “생리를 하다가 멈추고 짧은 기간 내에 다시 생리한다는 기록이 있으면 이는 임신중단을 시도한 여성이나 해당 시술을 행한 의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생리주기 앱 개발자들은 사용자 데이터를 익명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가임기·생리주기 등을 예측해주는 피임 앱인 ‘내추럴 사이클스’는 25일 “우리조차도 사용자를 식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 사용자들이 완전히 익명화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 애플, 월트디즈니, 페이팔 등 주요 기업들은 직장 건강보험을 통해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주에 거주하는 직원들에게 다른 주에서 임신중단 시술을 받는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을 데리고 주 경계를 넘을 경우 고소를 당할 수 있듯이 원정 임신중단에 비용을 댄 기업들도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곧 출산 선택권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임신중단 약물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기된 날 임신중단 약물을 알선해주는 비영리단체 ‘저스트 더 필’에는 예약 문의가 100건 가까이 접수됐다. 이는 평소 문의의 약 4배로,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곧바로 임신중단 금지에 나선 텍사스주 등에서의 문의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주는 지난해 9월 임신 6주가 지나면 임신중단 수술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임신중단 약물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하는 웹사이트 ‘플랜 C’는 하루 접속자가 5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NYT는 미국에서 임신중단 건수 과반이 이미 약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수요가 급증해 임신중단 약물 처방이 법적 분쟁의 새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피임과 동성혼 등이 다음 규제의 대상이 될 것이란 불안감까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판례 파기에 찬성한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향후 우리는 그리스월드, 로런스, 오버게펠을 포함해 앞선 판례를 모두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각각 피임과 동성애, 동성혼 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소수 인종, 동성애자에 대한 권리의 철회를 촉발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면서 백인과 남성에 맞서 어렵게 확대한 권리가 대법원에 의해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30년간 동성혼 상태인 에이미 마틴은 WP에 동성혼 금지가 대법원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면서 “미국의 뼈대와 기초가 풀려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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