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게 '죄'였던 낙태.. 위헌 결정됐지만 법 개정 난항 [이슈+]
국회, 대체 입법 논의 진전 無.. 입법 공백 이어져
여성단체·진보진영 '폐지' vs 종교계·보수진영 '유지'
낙태죄 두고 여야·각계 대립 팽팽.. 합의 난항 원인
◆‘낙태죄’ 시작은 100년전 일제시대
한국에서 낙태가 죄가 된 것은 일제시대 때부터다. 기독교 윤리관에 기초했던 일본형법의 영향을 받아 낙태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일제 의용 형법에는 임신한 여성이 약물 등 방법으로 임신중절을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임신중절을 도운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그 과정에서 임신한 여성을 사상에 이르게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찬반논쟁이 다시 불거졌고 그 결과 1973년에 모자보건법이 제정됐다.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사유를 정해 낙태죄 성립 범위를 완화하는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 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 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 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 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일부 사유를 제외하고는 인공임신중절을 엄격히 죄로 인정하는 이 법은 이후 50여년 가까이 유효했다.
◆낙태죄 ‘위헌’ 됐지만 1년 반째 ‘무법상태’
이에 여성단체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으나 종교계와 보수진영의 반대가 거셌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낙태죄 처벌 조항에 합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 시술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 방침을 밝히면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검은 시위’가 지속됐다.
정부와 여야는 입법 시한이던 2020년 말이 되어서야 관련 입법에 나섰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박주민 의원은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안을,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낙태 허용 기간을 10주로 제안하는 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정부안 등을 포함해 현재 6건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보건복지위 등 유관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2020년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상태에서 관련 공청회를 열기도 했으나 이후 절차가 유야무야되면서 낙태죄 폐지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낙태죄가 사라진 지난해부터 1년 반 넘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 균형을 잡을 새로운 법적 기준점이 설정되지 못한 것이다.
전반기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의원들과 일부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원구성이 완료되면 입법 개정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이날 SNS를 통해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한 ‘역사 퇴행적 비극’”이라며 “우리나라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관련법 개정이 여전히 되지 않고 있다. 국회가 ‘낙태권’ 보장을 위한 빠른 입법으로 헌법불합치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의가 시작된다고 해도 합의를 보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처럼 한국에서도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여야의 입장이 갈리는 탓이다.
민주당은 ‘낙태죄 전면 폐지’ 또는 ‘임신 중절 허용기간 대폭 완화’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6주 혹은 10주내 임신 중절만 인정하고 이후엔 임신부의 건강에 현저한 침해가 있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여기에 여성계와 종교계, 의료계도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앞으로도 낙태죄 폐지 관련 국회 입법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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