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 떠넘겨 필수의료 해결..윤석열 정부의 '은밀한 민영화'[팩트체크 민영화]

최민지 기자 입력 2022. 6. 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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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무늬만 공공' 의료
지방 민간병원에 공공의료 위탁
진료비 증가·취약계층 소외 가능성
건보 재정건전성 중시, 보장 확대 뒷전

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승리한 직후 소셜미디어에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질 것은 의료보험, 생길 것은 의료민영화’라는 글이 돌았다. 여권은 즉각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110대 국정과제’ 보건의료 분야에도 ‘민영화’는 등장하지 않았고 대신 ‘공공’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하지만 내용을 분석한 보건의료계는 ‘알맹이 없는 공공의료’ ‘공공 라벨만 붙인 민간지원 정책’이란 우려를 내놨다. 지난 4월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 총회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공의료에 매몰되지 않는 의료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것도 여권의 정책기류를 가늠케 한다.

■ ‘공공’ 외치는데 ‘민영화 논란’ 이는 이유

‘의료민영화’ 논의에서 유의해야 할 대목은 한국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의료공급이 민간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의료지불체계(국민건강보험)의 약화·공공의료의 추가 위축 여부가 논의의 초점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당시 공약집과 인수위 시절 보건·의료 국정과제를 보면, ‘필수의료 국가책임제’와 ‘공공정책 수가 도입’ 등 공공성 강화로 비치는 항목들이 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민간병원에 공공정책 수가를 지급해 음압병실이나 응급실 설치·운영 등 공공보건 업무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공공병원을 짓는 대신 민간병원에 공적자금(건강보험 재정)을 지급해 필수의료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시대적 과제가 된 ‘공공의료 확충’ 어젠다를 ‘되레 의료민영화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참여연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정부가 행정명령까지 내렸는데도 민간병원이 환자 수용을 기피하면서 얼마 안 되는 공공병원이 확진자의 70%를 도맡느라 의료붕괴 직전까지 갔던 코로나19 상황을 돌이켜보면 필수의료를 민간에 맡기겠다는 발상은 안이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민간병원에 정책 수가를 주려면 공적 통제 방안이 뒤따라야 하지만 제대로 작동할지도 의문이다.

수도권에 몰린 상급·공공병원을 지방의 민간병원으로 위탁해 취약지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은 진료비 증가, 취약계층 의료 소외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내놓은 ‘지방의료원 운영혁신방안 연구’(2007)를 보면 1996년 마산의료원, 1998년 이천의료원, 군산의료원이 민간 위탁된 이후 비위탁 의료원에 비해 주민 진료비 부담이 커졌다. 입원 환자 1인당 하루 진료비 변화를 보면 마산의료원은 민간 위탁 이전보다 2.8배, 이천의료원은 2배로 증가했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민간병원이 과잉진료에 나섰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2020년 말) 비율은 전체의 5.4%, 전체 병상 수 중 공공병상 비율은 9.7%에 불과하다. 평균 공공병원 비율이 55.2%, 평균 공공병상 비율이 71.6%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지만 윤석열 인수위의 공공병원 확충 계획은 분명한 게 없다. ‘공공의료 인력·인프라 강화’ ‘감염병 대응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의 나열만 눈에 띌 뿐이다.

건강보험 분야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보장성 강화’에 대한 언급 대신 ‘지출 효율화’를 강조하고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들에 대한 의료혜택 강화보다 건보 재정건전성을 중시하겠다는 뜻이어서 결과적으로 보장성 후퇴로 이어질 공산이 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서 ‘건강보험 재정 정부지원 확대 추진’이 언급돼 있긴 하지만 목표치도 제시돼 있지 않다.

정백근 시민건강연구소장(경상대 의대 교수)은 “공공병원 양적 확충 같은 직접적인 공공의료 확대 방안이 후순위로 밀려 공공병원 적자가 지속되면 진주의료원처럼 폐업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적보험 제도의 보장성 확대와 공공의료의 확충은 뒷전인 채 공공영역을 민간영역으로 넘기거나 위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두고 ‘은밀한 민영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2017년 7월 준공된 제주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 제주녹지국제병원 전경. 지상 3층·지하 1층, 47개 병상 규모로 조성된 국내 첫 영리병원이었으나 제주도의 ‘내국인 진료 제한’ 방침에 반발해 운영에 들어가지 않았고, 결국 2019년 4월 개설 허가가 취소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녹지병원’
허가 취소에도 ‘내국인 진료 가능’ 불씨
현 정부 인사들, 영리병원에 긍정적
설립 땐 건보 당연지정제 구멍 불가피

■ 불씨 꺼지지 않은 영리병원 사태

제주도는 지난 21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녹지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을 확정했다. 2015년 정부가 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계획을 승인한 지 7년 만에 사태가 일단락된 것이다. 영리병원은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주로 외국인 환자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영리병원은 일반병원과 달리 이윤을 투자자에게 배당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현행법은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이거나 500만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외국계 의료기관을 제주도와 8개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문을 열어 내국인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영리병원 허용이 의료민영화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법원이 지난 4월 녹지병원에 대한 제주도의 내국인 진료 제한을 위법으로 판결한 것이 이런 우려를 키웠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이 판결을 들어 일반병원이 ‘형평성’이나 ‘역차별’을 이유로 당연지정제에 대해 헌법소원에 나서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건강보험 이탈자가 발생하면서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성이 악화되고, 건보 보장률(현재 약 65%)도 하락할 수 있다. 공적 의료지불체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영리병원이 ‘의료시장의 분리’일 뿐이며 의료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지정제만 유지한다면 고소득자가 영리병원과 민간보험을 이용하면서도 국민건강보험료를 계속 납부하니 소득재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그러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면 건강보험이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지만 병원 자체가 수익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과잉진료나 보건의료 노동환경 악화 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영리병원이 다른 병원의 진료비 상승을 부추기는 ‘뱀파이어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새 정부가 영리병원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영리병원을 긍정적으로 보는 인사들이 여권에 포진해 있다. 인수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대선 후보 시절에 “의료산업 육성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찬성 의견을 낸 바 있다. 재임 당시 녹지병원을 허용한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입각했다.

제주녹지병원 사태가 일단락된 지금, 영리병원의 불씨는 꺼진 것일까.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 운동본부의 오상원 정책국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제주가 아니라도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에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관건은 지역 주민의 반대를 이길 수 있느냐가 될 겁니다.”

윤 정부 ‘의료의 먹거리화’ 기조 속
빅테크 기업의 의료시장 진출 가속화도
공공의료체계 붕괴 우려 높여

■ 의료의 산업·상품화 가속화 우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의료 데이터 사업과 관련 규제 완화는 새 정부에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후로 바이오 분야의 ‘민간 주도 성장’과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2023년 시범 개통을 앞두고 있는 ‘마이헬스웨이’(의료 분야 마이데이터)는 각 기관에 흩어진 개인정보를 모아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한 서비스다. 지금은 민간기업 참여가 제한돼 있지만, 정부는 2024년부터 보험사 등 민간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민감한 개인 건강정보의 활용이 개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크다. 2020년 시행된 ‘데이터 3법’으로 가명정보의 과학적 연구 목적 활용이 가능해졌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은 “(새 정부가) ‘과학적 연구’에 대한 해석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열어줄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기업이 개인 동의 없이 기업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민감한 개인 건강 의료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재나 다름없는 데이터가 특정 기업에 배타적으로 허용되지만 이로 인한 이득이 사회 전체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료민영화’의 성격도 있다고 했다. 재식별 가능성이 있는 가명정보의 악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빅테크’ 기업들의 의료시장 진출 가속화도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바이오는 ‘욕망을 무한히 일으킬 수 있는’ 필수재라는 점에서 기업들이 주목하는 분야다.

카카오는 2018년부터 아산병원과 의료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내 독립기업인 카카오헬스케어를 론칭해 투자 규모를 키웠다. 네이버는 최근 사내병원을 열어 직원을 대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이 사내병원은 네이버의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간주된다.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은 이미 2019년 원격의료 서비스 ‘아마존 케어’를 시작으로 온라인 약국 사업에도 최근 뛰어들며 원격의료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정 보험사와 협약해 보험가입자에게 웨어러블기기를 제공하고 심박수 등 건강정보도 수집한다. 오직 아마존이 제공하는 민영의료 시스템 안에서 진료나 약을 받고, 보험처리까지 끝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서영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디지털 헬스의 상업화가 영리병원(허용)과 만날 경우 공공의료체계에 큰 구멍이 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영리병원의 빗장이 풀리면 데이터가 의료기관 밖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쉽게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빅테크가 직접 병원을 운영하게 된다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윤 창출 모델을 실제 실현할 수 있는 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건강보험과 원격의료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의료체계가 민간영역에 새롭게 생겨 공공의료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료의 ‘먹거리화’ 기조는 지난 16일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도 확인됐다. 정부는 이날 10여년간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재검토해 추진한다고 밝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교육·공공서비스 등 영역을 서비스 산업으로 규정, 해당 산업 발전을 위한 기본·시행 계획을 세우고 추진 상황을 점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 건강권 보장 수단인 의료를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보고 생산성 향상이나 경쟁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의료서비스의 공공성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선 2020년 12월 방호복 차림의 의료진이 국립중앙의료원 음압병실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작은 정부’와 의료서비스의 질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종합하면 민간영역의 확대와 ‘작은 정부’ 지향이다. 전문가들은 공공병원 확대와 인력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통해 공공의료체계를 회복하고 의료의 상품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백근 교수는 “이미 한국은 의료의 상품적 성격이 매우 강한 나라”라며 “이윤을 추구하는 의료서비스 공급자 비율을 최대한 줄이고 보건의료기관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키워야 의료로 사람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국장도 “의료서비스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민간을 키울 것이 아니라 병원이 없는 곳에 병원을 짓고, 인력에 투자하는 것만이 결국 의료서비스 질과 국민 생명 안전에 직결된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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