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올해로 81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의 현재 근황

조윤화 기자 2022. 6. 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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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서울 충정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서울시가 지난 16일 마포로 5구역 재정비 차원에서 충정아파트 철거를 결정했기 때문인데요. ‘재건축’과 ‘근대건축물 보존’이라는 갈림길에서 숱한 논란을 낳았던 충정아파트가 철거되면 ‘국내 최고(最古) 아파트’ 타이틀은 어디가 될까요. 바로 부산 중구의 청풍장아파트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건축돼 부산이 임시수도이던 시절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인사 숙소로 이용됐던 곳입니다. 라노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21일 안전진단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은 청풍장아파트를 찾은 라노.


부산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잠시 걷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건물이 눈에 띕니다. 갈라진 외벽과 녹슨 창살에 페인트를 다 벗겨졌더군요. 출입구에는 지난해 11월 안전등급 5단계 중 가장 낮은 ‘E등급’을 받았다는 안내판이 붙어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자 훼손된 벽과 갈라진 틈이 숱하게 눈에 띕니다. 여러 층을 오르내리며 둘러보다 보니 ‘사람이 살아도 안전한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어요. 문화재청은 2006년 청풍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다 입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안 들어볼 수 없죠. 외출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께 다가가 말을 붙였습니다. 청풍장아파트에서 20년째 거주 중이라는 할아버지가 들려준 얘기는 뜻밖이었어요. “비 새는 곳도 있고, 불편한 게 없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 불편 안 한 사람이 어딨겠어. 그래도 여기가 살기는 좋아.”

‘살기 좋다’는 할아버지의 말씀과 달리 현재 청풍장 24세대 전체는 ‘구조안전 위험시설물’로 분류된 상태입니다. 건물 1층에서 30년째 가게를 운영 중인 A 사장님은 “다소 위험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실제 집안은 사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고 하셨어요. 대부분 38평 너른 평수에 방 3개의 복도식 구조로 설계됐다고 합니다. 지어질 당시에는 다다미방·나무 욕조를 갖춘 일본식 건축 특징을 상당수 갖고 있었으나 입주민들이 고쳐 쓰면서 지금은 다다미방이 딱 1세대 남았다고 해요.

A 사장님은 청풍장 재건축에 대해선 “30년 전 장사 시작할 때부터 나온 소리”라면서 회의적 시각을 보였어요. “아파트를 새로 지으려면 도시가스도 들어와야 하는데, 도로를 다 들어낼 수도 없고, 될까 싶다. 현재 거주자 대부분은 주변에서 장사를 하고 있어서 임대주택 준다고 해도 떠나려는 사람이 적을거야.”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다 못해 다소 위험해 보이는 아파트 내벽을 바라보는 라노.


또 다른 입주민 B 씨는 “지난해 청풍장 바로 맞은 편에 아파트 신축공사가 시작되고 난 뒤 갈라짐 정도가 더 심해지고 건물 내벽에 안 새던 물이 새기 시작했다. 공사 관계자들 불러다 보여주기도 했는데 ‘원래부터 이렇지 않았느냐’며 별다른 반응이 없더라”라며 한숨 쉬었습니다.

실제로 안전진단 E등급은 ‘건축물 사용을 즉각 금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을 해야 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중구청 재생건축과 담당자는 “건물 사용 제한 명령을 내린 상태이지만, 오래 거주하던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강제 퇴거가 어렵다. 소유주에게 안전 조치 명령이 내려간 상태인데 시정 조치가 잘 안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대로 두고만 봐야 할까요? 부산시가 2010년 제정한 ‘근대건조물 보호에 관한 조례’ 8조에는 근대건조물의 보호·관리를 위해 수리에 드는 비용의 일부를 부산시가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습니다. 반면 중구청 관계자는 “조례가 있더라도 사유재산이기에 소유주 동의가 없다면 하기가 어렵다. 부산시도 청풍장 개보수에 대한 예산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과) 교수는 “청풍장아파트는 근대 주거의 삶을 설명하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공간이다. 부산시가 의지를 가지고 공공성 차원에서 보존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청풍장은 ‘근대건축물’로 보존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세월이 지나 서울 충정아파트처럼 철거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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