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위한 정책인가' 주민이 평한다면
서울 종로구청에서 지난 15일 ‘행복영향 워크숍’이 열렸다. 구민 10명이 전문가·공무원들과 함께 참석해 행복을 묻는 지표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종로에서는 서울 자치구 중 유일하게 주민의 ‘행복도’를 행정에 제도적으로 반영할 방식을 찾는 중이다.
27일 종로구에 따르면, 주민들은 워크숍에서 구정 점검에 활용할 ‘행복영향평가’를 위한 원칙들을 논의했다. 주민들은 구가 추진하는 사업들이 개인과 지역사회의 행복에 기여하는지를 ‘긍정’ ‘보류’ ‘부정’ 정도의 간단한 지표로 나누는 방안을 논의했다. 지역·세대·구성원 사이의 갈등 예방과 사회 통합, 행복 취약계층을 고려한 지역 포용성도 평가 항목에 넣었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의 ‘2022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146개 조사 대상 가운데 59위다. 순위는 지난해(62위)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생활 만족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특히 다각·다층화된 사회에서 전국 단위 접근은 한계가 있다. 주민 생활에 가장 가까운 지자체에서 지역 특성에 맞춘 행복 정책을 발굴해야 한다는 제안들이 나오는 이유다.
부탄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일본 도쿄도 아라카와구에 이어 대전 대덕구 등 국내 도입이 시작된 행복영향평가는 행정과 지자체 사업에 대해 ‘행복의 측면’에서 보완 필요성을 묻고 주민의 의견을 제시하는 장치라는 의미가 있다.
종로는 2015년 주민 제안으로 전국에서 처음 이 논의가 시작된 곳이다. 당시 주민들은 행정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구축하고 문화의 발전, 사회적 건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행복을 기반으로 정책을 검토할 수 있는 제도를 구상했다.
같은 해 주민과 전문가, 구청 직원 등 300여명이 모여 행복 조례 대토론회를 열었고, 이듬해 주민 발의 형식으로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구의회에서 한 차례 부결, 한 차례 미상정되면서 조례안은 자동 폐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종로구가 다시 상정해 구의회를 통과하면서 2017년 9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주민 행복 증진 조례’가 공표됐다. 이 조례는 ‘행복’을 “주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삶의 안녕과 만족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종로에서 행복영향평가를 만드는 데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한 데는 이 같은 지역적 배경이 있다.
워크숍에 참석한 주민들은 일종의 ‘지수’를 산출하기 위한 과정이지만 “평가로 우열을 가리거나, 특정 사업을 도태시키려는 게 아니라 ‘주민 관점에서 생각해 봤는가’를 상기시키는” 보완 과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 김방현씨는 “과업, 실적을 보는 게 아니라 주민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취지를 말했다.
“(평가지표) 초안에 ‘충분히 행복한가’라고 묻는 항목이 있었는데 ‘충분히’를 빼자고 했어요. ‘충분’의 기준은 편차가 크잖아요. 단어 하나도 꼼꼼히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보통 사업은 성과를 위주로 전망하는데, 행복영향평가를 도입하면 주민의 생각을 염두에 둘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종로구 주민행복위원회 위원인 최길엽씨는 “경제성만 따졌던 사회가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묻기 시작한 것처럼 정책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예산이 큰 사업은 영향을 받을 주민들도 많은데, 이렇게 대상자가 많은 분야부터 도입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 김태정씨는 “행복영향평가를 한다 해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 관성적으로 진행했던 사업들의 보완지표로서는 기능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사 온 지 4년이 지났다는 그는 종로에 산 기간은 길지 않지만, 주민의 ‘행복’을 묻는 정책이 궁금해 워크숍에 자원했다고 했다.
“사업을 하지 말자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고려할 점을 제안하는 거예요. 상호 검토하는 차원이죠. 주민 참여가 필요하거나 사회자본을 자치구가 직접 분배하는 성격의 사업에서 시행해 봤으면 합니다.”
종로구는 향후 주민 의견수렴 등을 거쳐 행복영향평가 모델을 구체화해 평가 대상과 시기, 평가 주체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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