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박카스와 아로나민

현대인은 너나없이 피곤하다. “피곤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언제 어디서든 듣는다. 만성피로증후군도 늘어나 한국에서 해마다 2만5000여명이 발생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은 이미 10년 전에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 했을까. 현대사회를 통찰한 책 <피로사회>는 특히 한국에서 주목을 끌었다. 책에서 설명되는 ‘성과사회’가 한국 사회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을 피로하게 하는 원인은 스트레스, 우울증 등 수없이 많다. 핵심 요인의 하나가 수면의 질이다. 지난 3월 ‘세계 수면의날’을 맞아 한 다국적 기업이 실시한 세계 수면조사 결과, 각국 1만7000여명 중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난다는 응답자는 21%에 불과했다. 한국인 응답자의 34%는 ‘피곤하다’고 했다. 평균보다 두 배 높다. 약육강식 수준의 치열한 경쟁, 배려·연대보다 각자도생 문화 등도 피로를 부추긴다.
피로하다보니 피로해소제를 자주 찾는다.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도 해마다 10% 안팎씩 급성장하며 지난해 말 5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연세대 의학사연구소가 펴내는 인문학 시리즈의 한 권으로 <약의 인문학>이 출간됐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쓴 책의 한 장은 ‘아로나민과 박카스의 성공신화’다. 피로해소제로 유명한 장수상품들이다. 박카스는 1961년 알약으로 나왔다가 1963년 드링크제로 전환했고, 활성비타민을 강조하는 아로나민은 1963년 출시됐다. 신규환 대구대 교수는 이 피로해소제들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강한 체력, 빠른 피로 해소를 요구한 산업화시대 사회상과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로사회>에서 한병철은 현대사회를 개인 스스로 성과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게 하는 성과사회라 규정한다. 자본주의의 진화 결과인 성과사회에서는 스스로 설정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좌절감, 우울감에 빠진다. 자신을 늘 채찍질하게 만들어 스스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요즘엔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물가, 고금리 등 경제난도 피곤함을 더한다. 빨리 찾아온 열대야, 장마 속의 높은 불쾌지수도 피로를 보탠다. 한병철은 책에서 성과사회에 대응한 사색적인 삶,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되새겨 볼 만하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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