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개방'에 목매나..위험요소 원천제거가 우선

한겨레 2022. 6. 2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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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미군기지 임시개방 찬반 ①]
녹색연합과 ‘온전한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관계자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신용산역 인근 용산공원 시범개방 행사 출입구 앞에서 ‘오염정화 없는 용산공원 시범개방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위험물질이 상존하고 그 위험물질이 기준치를 월등히 초과하는 것을 알면서도 오염 정화가 아닌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국민 건강과 안전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울 용산 미군기지(294만㎡) 시범개방(6월10~26일)을 두고 최근 논란이 일었다. 오염된 토양을 완전히 정화하기 전에 개방해 시민 건강을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환경단체 지적에, 정부는 미군과 가족들이 생활하던 오염되지 않은 땅을 개방했으며 인조잔디 등으로 토양과의 접촉도 최소화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논란은 어떤 식으로건 결론 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국토교통부는 오는 9월부터는 시범개방 때보다 4배 넓은 40만㎡를 임시개방해 방문객들을 맞도록 할 방침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 앞으로 어떤 점을 눈여겨봐야 하는지 등을 살피기 위해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과 남경필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의 글을 싣는다.

[왜냐면] 정규석 | 녹색연합 사무처장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환경오염물질 및 환경오염원의 원천적인 감소를 통한 사전예방적 오염관리에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함.’

환경정책기본법 8조 1항에 규정된 사전예방 원칙이다. 오염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오염물질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법으로 정한 것이다. 확률, 통계 등을 논거로 “이 정도면 괜찮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니 안심해라” 따위의 말은 국가, 그러니까 공무원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조금의 우려라도 있다면 그 위험요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 정도는 국민에게 말해줘야 명색이 공무원일 수 있다.

그런데 “주 3회 2시간씩 25년을 용산공원에 가도 문제가 없으니 안전성은 문제 될 게 없다”고 장관을 비롯해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말하고 있다. 묻고 싶다. 그렇다면 매일 3시간씩 그곳을 찾으면 몇년 동안 안전할 수 있는가? 천식이 있거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이 기준에 똑같이 부합하는가? 어린이나 노약자는 또 어떠한가? 서울대에서 진행했다는 어떤 연구결과를 근거로 말하고 있다는데 도통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는 공개할 수 없단다.

무엇보다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의 가장 큰 오류는 이들이 말하는 ‘용산공원’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시범개방을 마쳤고, 9월부터 임시개방을 하겠다는 반환 용산 미군기지 부지는 오염정화 없이는 공원이 들어설 수 없다. 우리 정부가 주관한 유해성 조사 보고서는 토양환경보전법이 규정하는 공원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만큼 해당 부지의 오염이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다. 미군이 사용한 숙소 부지는 TPH(석유계총탄화수소: 토양의 기름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단위) 수치가 공원 조성이 가능한 기준에서 29배를 초과하고, 지하수에서는 대표적인 발암물질인 벤젠과 페놀류가 기준치의 3.4배, 2.8배를 웃돈다. 푸드트럭을 가져다가 쉼터를 만들었다는 스포츠필드도 TPH는 기준치를 36배 초과하고, 최악의 독성물질 중 하나인 다이옥신도 검출됐다. 그런 곳을 두고 ‘시범’, ‘임시’ 등의 교묘한 말장난으로 정부가 편법을 저지르고 있다.

120년 넘게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서 지금까지 우리 주권이 미치지 못한 대표적인 치외법권 지대, 올바로 돌려받아 우리 땅임을 분명히 해야 할 소중한 곳, 바로 용산 미군기지다. 70년 넘게 그곳을 점유하며 오염을 일으켰다면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우리는 미군에 정화비용을 청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오염은 미국도 대한민국도 분명히 알고 있는 실체다. 얼마 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텔레비전에 나와 발 딛고 서서 안전하다고 인터뷰했던 바로 그곳은, 미 국방부가 최악의 유류 유출 사고가 있었다고 인정했던 곳이다. 미국은 최악의 오염이 있었다는데 우리나라 국토부 장관은 안전하단다. 최근까지도 미군들과 그 가족들이 생활했던 곳이니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미국 공무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미군에 정화비용을 청구하기도 전에 장관부터 나서서 국민에게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과의 정화비용 협상은 시작 전부터 난망하다.

용산공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용산공원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토부는 이 법으로 최초의 국가공원인 용산공원을 준비 중이었다. 계획상 용산 미군기지 모든 부지를 반환받은 이후 오염정화 기간을 포함해 조성 기간은 7년이었다. ‘용산공원’이라는 명칭도 국민공모로 정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사달이 났을까? 도대체 왜 ‘당장 개방’에만 몰두해 모든 단계를 건너뛰려고 하는 것일까?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법치’, ‘공정’, ‘상식’과 정반대인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제한적인 토지 피복이나 일률적인 시간제한 등으로 용산 미군기지의 오염물질이 방문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저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의 경우 오염물질 노출에 훨씬 취약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진 정부라면 이런 몰상식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오염물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단 하나의 위험까지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세우는 게 합당하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가 이야기하는 법치고 공정이고 상식이다. 용산 반환 미군기지를 두고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첫번째가 오염정화인 이유다.
■ 관련기사 보기 : [용산미군기지 임시개방 찬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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