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15> 대구] 우리가 몰랐던 한적하고 여유로운 도시

최갑수 입력 2022. 6. 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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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슬산 정상에 자리한 대견사. 2 소나무 빼곡한 북지장사 숲길. 3 사문진 나루터 주막촌. 사진 최갑수

대구 하면 복잡한 대도시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높은 빌딩 숲속을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골목길,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시장, 억세면서도 친근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 대구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대구 도심이 보여주는 이 북적임과 그 속에 꿈틀대는 활력, 그리고 그 북적임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끼며 다닌다.

사실 대구에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행지가 많다. 대구시는 시 곳곳에 자리한 생태자원들을 활용해 ‘대구 내추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 시내권 여행코스와는 달리 북적이는 관광객에게 떠밀려 시간에 쫓기며 여행지를 둘러보지 않아도 되고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여행지를 돌아봐도 좋은 곳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비슬산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산이다. 봄이면 정상부를 붉게 뒤덮는 철쭉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전기자동차를 타고 20분 남짓 오르면 웅장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대견사를 만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이 초임 주지로 임명받아 10년간 주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전국적인 기도 도량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남쪽 눈앞으로는 시야가 탁 트여 굽이치는 낙동강과 달성을 전망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추노’ ‘대왕의 꿈’ ‘장영실’ 등 굵직굵직한 사극 드라마들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대견사 뒤로 난 나무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참꽃 군락지다. 해발 1000m의 고위평탄면에 약 100만㎡ 규모로 펼쳐져 있다. 참꽃들이 절정을 이룰 때면 산 전체가 붉게 타오르는 듯하다. 참꽃이 필 때는 이미 지났지만, 운무로 가득한 경치만으로도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전기차로 오르는 도중 암괴(돌알)를 자주 볼 수 있다. 암괴란 큰 자갈이나 바윗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산 사면이나 골짜기에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하는데, 비슬산 암괴류는 경사가 15도 기울어진 채 무려 길이 2㎞, 폭 80m, 두께 5m로 산자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영국 다트무어, 미국 시에라네바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암괴류가 유명하지만, 비슬산 암괴류도 이들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옛 주막에 앉아 느끼는 낙동강의 정취

대구는 어느 지역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풍부한 문화유산 자원을 갖추고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한때 낙동강 하류를 대표하는 나루터였다. 조선시대에는 왜와의 무역중심지 역할을 해 무역창고인 왜물고(倭物庫)가 설립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도 부산 구포에서 경상북도 안동 사이를 오르내리는 낙동강 배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 사문이라는 이름은 낙동강 홍수로 인해 마을이 형성돼 모래를 거쳐서 배를 탄다고 해 붙여졌다.

사문진 나루터는 한국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곳이기도 하다. 1900년 3월 26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턴 부부가 대구 지역 교회로 부임하면서 피아노를 가지고 왔다. 당시에 짐꾼 20여 명이 사흘 동안 지금의 약전 골목 부근의 선교사 자택까지 피아노를 힘겹게 옮겼다고 한다. 당시 피아노 소리를 처음 들은 주민들은 빈 나무통 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매우 신기하게 여겨 통 안에서 귀신이 내는 소리라 하여 ‘귀신통’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한 대구 출신의 영화감독 이규환이 1932년 개봉한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를 촬영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문진 나루터 한쪽에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사문진 주막촌이 조성되어 있다. 초가집과 원두막을 재현해 옛 조선시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대구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잔치국수와 쇠고기국밥, 부추전, 두부와 막걸리 등을 파는데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막걸리 한잔이 여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사문진 나루터 옆 화원동산은 대구의 여유로움을 흠뻑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공원을 한 바퀴 일주하는 산책로는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가는 길은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예쁜 숲길. 가족과 혹은 연인과 함께 손을 꼭 잡고 걷다 보면 더 깊어가는 여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 숲길 걸으며 힐링 산책

팔공산 자락에 북지장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절까지 이어지는 2㎞ 남짓한 소나무 숲길이 참 좋은 곳이다. 승용차 1대가 제대로 지나기 어려운 좁은 오솔길 양옆으로 시원하게 뻗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심겨 있다. 심호흡을 깊게 하면 상쾌한 솔향이 콧속으로 파고든다. 가끔 발등에 숲 저편에서 날아온 새소리가 툭툭 떨어진다. 뒷짐을 지고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느긋하게 걷다 보면 불현듯 아담한 절 한 채가 나타난다. 작고 낡았지만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북지장사는 지금이야 대웅전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 전부지만 한때는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다. 대웅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대웅전 앞에 자리한 삼층석탑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북지장사라는 이름은 대구 달성 사찰의 남지장사와 구분하기 위해 이름 지었을 뿐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북지장사 지장보살도’ 역시 이 절의 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여행수첩

먹거리 대구는 ‘막창’으로 유명하다. 연탄불이나 숯불에 구운 다음 집집이 비법을 동원해 만든 된장소스에 찍어 마늘과 쪽파를 곁들여 먹는다. ‘마루막창’이 요즘 뜨는 곳. 동인파출소 뒷골목에 찜갈비 골목이 있는데 20여 개의 찜갈비 집이 성업 중이다. 갈빗살에 빨간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은 양념과 함께 조리하는데 등줄기에 땀이 밸 정도로 화끈하게 매운맛이 특징이다. ‘낙영찜갈비’ ‘벙글벙글 찜갈비’가 유명하다. 진골목 막다른 길 끝에 ‘진골목식당’이 있다. 이 식당에서 고춧가루를 넣은 칼칼한 고깃국을 끓여내면서 ‘육개장’이란 음식이 시작됐다. ‘상주식당’은 경상도식 추어탕으로 유명하다.

대구 경북을 대표하는 대찰 동화사는 팔공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대찰이다.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화상이 세운 절인데, 당시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흥덕왕 7년(832년)에 심지왕사가 다시 세울 때 겨울인데도 경내에 오동나무꽃이 활짝 피었다고 해서 동화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대웅전은 1727년에 중건한 것이며 염불암을 비롯하여 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대웅전 앞 누각에 ‘영남치영아문’이라는 현판이 있어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승군을 지휘한 본부가 동화사임을 알 수 있다. 동화사 경내에는 33m 높이로 서 있는 통일약사여래대불이 사찰의 위세를 짐작게 한다. 

내추럴 대구 ‘내추럴 대구’는 대구광역시 전역의 생태 자원들을 소개함으로서 도심 관광과 더불어 생태 관광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용 요금 1만5000원에 교통비, 입장료, 식사가 포함된다. 문화관광해설사도 동행한다. 자세한 내용은 ‘내추럴대구.kr’에서 볼 수 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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