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발목행정에 40억 들인 공장 흉물됐다"..민원 年 756건으로 급증
법정다툼 하느라 경영차질
감사원 문 두드리는 기업들
민원 年 756건으로 급증
◆ 기업 울리는 지자체 ◆
"인허가 문제로 광주 광산구와 법정 다툼을 벌이는 동안 인건비와 시설비 등으로 40억원 상당의 손해를 봤습니다. 공장을 지을 때 7억원을 들여 사놓은 기계는 이제 고물로 팔아야 할 처지입니다." 폐기물 처리 기업인 정원산업개발의 이영기 회장(65)은 지방자치단체의 갑작스러운 사업허가 취소 때문에 수년간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결국 부당한 행정처분이었음을 밝혀냈지만 남은 건 수십억 원의 손실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정원산업개발은 2018년 9월 광주 황룡강변 인근 공장 용지에서 폐기물 종합재활용업을 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광산구에 제출해 2019년 3월 사업허가를 받았다. 공장 용지 매입과 기계 설비 등 투자에만 약 70억원을 들였고, 직원 23명을 고용해 4개월간 급여를 지급하면서 업무 교육까지 했다.
그러나 시설은 가동해보지도 못하고 철거해야 했다. 반대 민원이 제기되자 광산구가 돌연 하천 점용 용지 콘크리트 포장 등이 관련 법을 위반했다며 원상 복구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어 2019년 10월 사업허가까지 취소했다. 이 회장은 "광산구가 처음부터 사업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면 수십억 원을 들여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사들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지자체의 소극·부실 행정에 기업들이 고충을 겪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령을 소극적 또는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하거나 행정 편의적 업무 처리로 불필요한 기업 부담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 변화로 인해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한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거나 재량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구체적인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기업 요구를 거부하는 데 따른 고충도 적지 않다.
27일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 대전 부산 광주 등 전국 기업불편부담신고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2019년 298건에서 2020년 588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민원 756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실제 부당한 사실이 확인돼 시정 조치되거나 조사 필요성이 있어 감사 및 조사·이첩된 민원은 2019년 46건에서 2020년 122건, 지난해 118건으로 부쩍 늘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신고 내용을 보면 여전히 공공부문의 불공정한 관행이나 갑질 행태, 인허가권 남용 등으로 기업들이 경영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민신문고에도 위법·부당하거나 소극적인 행정처분으로 인한 기업 민원은 2019년 377건, 2020년 227건, 지난해 232건이 접수됐다.
'기업하기 나쁜 환경' 만드는 시군구 발목행정
인허가 '몽니' 부리거나
공장 건설허가 돌연 취소
법정다툼 끝에 승소했지만
막대한 손해 기업이 떠안아
과도한 잣대 들이대
우선협상자 선정된 기업에
"요구사항 누락" 부적격 처리
권한 막강한 지자체가 '甲'
기업 피해봐도 목소리 못내
일선 지자체의 과도한 잣대나 융통성 없는 업무 처리 등이 가뜩이나 경기 침체에 허덕이는 기업을 두 번 울리고 있다. 특히 막강한 인허가 권한을 휘두르는 소극·부실행정은 기업 부담을 한층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업이 지체되는 사이 막대한 손실을 기업을 감당해야 하지만 행정당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KT에스테이트 측은 "인허가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만큼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이 불가하다"며 조속한 처리를 호소했지만 단체장까지 직접 나서 공개적으로 용지 매각을 요구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결국 원주시는 1년여가 흐른 지난해 11월 사업계획을 승인·고시했고 아파트는 올해 4월이 돼서야 착공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도 행정 문제 등으로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9년 당시 SK하이닉스는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용인 클러스터 조성계획을 인가받았으나 3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산업단지는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은 초기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용인시는 물론 산단 방류수가 흘러들어가는 안성시까지 환경영향평가 범위가 늘어나면서 행정절차 및 처리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기까지 2년 반이나 소요됐다.
법적 동의 조건이 아닌 사유로 인허가 신청을 반려하거나 규정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처분해 기업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있다. A씨는 경기 남양주시에 목재 가구공장 건축허가 신청을 했다가 인근 학교 동의를 얻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허 처분을 받았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해당 공장이 학교보건법상 불허가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시에 허가반려 처분 취소를 권고했다.
충분히 검토가 가능한데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업무 행태 또한 여전해 기업들의 투자 의욕마저 꺾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관련 제조기업 B사는 생산라인을 증설하고자 제주도에 기존 건축물 용도변경을 신청했다가 반려 처분을 받았다. 해당 용지가 수도법에 따른 공장설립제한지역이라는 게 이유였다. 제주도는 권익위에서 B사가 계획한 공장이 단순 조립공정으로 지하수 환경을 저해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의견을 받고 나서야 뒤늦게 용도변경을 승인했다.
[이상헌 기자 / 진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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