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인 조작, 놀라운 결말.. 국가의 거짓말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입력 2022. 6. 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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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의 갑을,병정] 윤 일병 국가배상소송 항소심의 쟁점과 진실

[김형남 기자]

 2014년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한 윤승주 일병의 유족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이날 열린 국가배상소송 2심 선고를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승주가 가고 장장 8년을 온갖 소송을 하고 나서 얻은 게 이 종이 쪼가리(판결문) 몇 장뿐인데 이런 내용을 써서 줄 수가 있는가요?"

지난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고 윤 일병 사망 사건' 국가배상 소송 선고가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유가족이 분노에 차 소리쳤던 말이다. 법원은 윤 일병 사망 원인 조작, 은폐에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판시한 원심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알려져 있듯 군은 사건 직후 검시도 안 한 상태에서 윤 일병의 사인을 만두 먹다 목이 막혀 죽었다며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라 발표했고, 가해자들을 상해치사로 기소했다. 2014년 4월의 일이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난 같은 해 7월 군인권센터에 의해 윤 일병이 맞아 죽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그때야 사인을 '과다출혈에 의한 속발성쇼크 및 좌멸증후군'으로 바꾸고 살인죄를 적용했다. 그마저도 한참을 부인하다 이뤄진 일이다.

유가족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칫 평생 사랑하는 자식의 사인을 잘못 알고 살았을 수도 있었다. 평소 병영 부조리를 겪어 쇠약해진 터에 먹던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 죽었다는 것과, 구타로 인해 사망했다는 건 천지 차이다. 후자는 살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윤 일병을 죽인 가해자들이 법원에서 중형을 받아 사건이 끝난 줄 안다. 그러나 유가족의 싸움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하마터면 사인을 질식사로 알고 살아갔을 유가족들은 운이 좋아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치고, 싸우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양심 어린 제보를 보내온 덕에 그나마 뒤틀린 진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책 뒤에 숨어 자신들에게 불리한 모든 것을 감추려는 이들을 상대로 모든 사망사건 유가족들이 이런 결과를 얻어내는 것은 아니다.

윤 일병 가족들은 군으로부터 속았다는 걸 알았을 때 느꼈던 정신적 충격과, 비극의 반복을 막아야 겠다는 결심으로 싸움에 나섰다. 누가, 무슨 이유로 조작을 감행한 것인지 알아내지 않는다면 부모가 되어 자식 잃은 까닭마저 잘 모르고 살아가는 비극이 반복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쟁점
 
 2014년 8월 5일 당시 안규백 의원을 비롯한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이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현장인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생활관을 방문해 부대 간부로부터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사인 조작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2014년 4월 6일 윤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구타당하다 의식을 잃고 상급병원으로 후송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사건을 맡은 헌병 수사관이 온몸에 멍이 든 것을 보고도 모른 체 했다는 점이다. 수사관은 오후 7시경에 윤 일병의 옆구리, 다리 등에 멍이 시퍼렇게 든 것을 사진까지 찍어놓고도 9시경 유가족들이 동석한 자리에선 천연덕스럽게 처음 본 마냥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곤 부대로 돌아가서는 모종의 회의를 거친 뒤 몸에 든 멍이 며칠 전에 있었던 심폐소생술 훈련 과정에서 다친 것일 수 있다며 윤 일병이 먹었던 음식을 정밀 검증해보겠다는 해괴한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편철한 사진도 당시 찍었던 여러 장의 사진 중 몸은 이불로 덮어놓고 다리 일부만 보이는 사진 한 장만 골라 넣었다. 나머지 사진들은 보안감사를 이유로 다 삭제했다고 했다.

보고서가 작성되고 있던 늦은 밤, 병사 하나가 공익제보를 통해 윤 일병이 구타를 당해 죽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으나 가해자 수사는 다음 날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시작된다. 그 사이 가해자들은 윤 일병의 수첩 등을 다 찢어 태워버렸다.

두 번째 쟁점은 육군의 사인 발표와 관련되어 있다. 윤 일병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구타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던 7일 오후 1시 30분 육군본부에서는 육군참모차장 주관 하에 대책 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4시 30분 윤 일병은 사망했다. 육군은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단순 구타에 의한 사망 사건'이라 보고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직 부검은 고사하고 검시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후 7시경 육군본부 정훈공보참모는 기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언론브리핑을 하며 윤 일병의 사인을 '기도폐쇄로 인한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못 박았다. 이전까지 아무도 기도폐쇄라는 말을 쓴 적이 없는데 느닷없이 윤 일병의 사인이 둔갑한 것이다.

관련자들은 나중에 수사받을 때 의정부성모병원 의사로부터 '기도폐쇄에 의해 (윤 일병이) 뇌부종이 심해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지목된 의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절대 없다고 반박했고,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소속의 다른 의사들도 똑같이 진술한 바 있다.

근거도 불분명한 언론브리핑 이후로 사인 확정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검시 결과도, 부검 결과도, 헌병도, 군검찰도 모두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로 사인을 확정 지었다. 폭행으로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군이 감당해야 할 비난과 부담이 너무 거셀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판결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석에서 일어나고 있다.
ⓒ 권우성
세 번째 쟁점은 가해자들에게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를 적용한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 당시 조작된 사인에 의거해 가해자들을 상해치사로 기소한 군검사는 막 임관한 초임이었다. 유가족들은 초임 군검사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질식사를 확신하며 상해치사로 가해자들을 기소한 것인지 의문을 품어왔다.

그러나 시작부터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유가족의 싸움은 암초에 부딪히게 된다. 처음에 유가족들은 사인 조작에 관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모두 고소·고발했다. 전부 현역 군인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수사, 재판 관할은 군사경찰, 군검찰, 군사법원이다. 군검찰은 피의자들이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말을 잘 엮어 서로에 대한 변호 논리로 만들어 준 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불기소 처분했다.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은 셈이다. 유가족은 재정신청을 넣었지만 이를 담당한 고등군사법원도 전부 다 기각 결정을 내렸다.

유가족이 민사 국가배상 소송에 나서게 된 진짜 이유는 국가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데 있지 않다. 군사법체계가 유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사법체계상의 선택지를 다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민사 소송을 통해서라도 국가기관인 군이 조직적으로 윤 일병의 사인을 조작하려 했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1심 법원은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에서 모두 불기소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가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간단한 논리로 유가족을 패소시켰다. 불기소 처분으로 항변할 곳이 없어 찾아간 민사 법원에서 불기소 처분 때문에 국가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을 들은 셈이다.

그러곤 감옥에 있는 주범 이아무개 병장에게서 4억 원 상당의 배상금을 받으라는 판결을 했다. 변제능력이 없으니 있으나 마나 한 판결이다. 법의 이름으로 유가족을 이렇게까지 우롱해도 되는 걸까.

의심스럽다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헌병들이 재판정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 권우성
1심, 항소심 재판 진행 과정에서 사인 조작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들도 많이 나왔다. 가령 상해치사 기소에 있어 상부의 지휘를 받지 않았다는 군검사(현직 판사로 재직 중이다)의 서면 증언이 있었는데, 2014년 당시 육군본부 고등검찰부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법이 정한 권한에 따라 수사를 지휘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윤 일병의 멍 든 몸을 사진 찍었다는 수사관도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사진을 찍었다고 진술한 것도, 찍은 적 없다고 진술한 것도 모두 한 사람의 수사관이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 역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 기록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유가족들은 상고를 계획하고 있다.

유가족 집에는 윤 일병 사건 관련 자료가 말 그대로 방 한 칸에 가득 쌓여있다. 앞서 열거한 사건과 관련한 진실의 조각들은 국가가 나서서 찾아준 것이 아니다. 전부 유가족이 동분서주하며 8년을 모아 놓은 자료다. 이걸 모두 법원에 갖다주고 진실을 규명해달라 한 것이다.

귀하게 키운 건강한 자식을 나라 지키라고 보내놨는데 주검으로 돌려받은 일만으로도 서럽고 원통한 일인데, 국가가 나서 유가족을 속이고 우롱해놓고도 책임지는 자 한 명이 없다. 책임은 고사하고 진실을 밝혀보려는 노력하는 이도 없다.

대체 국가의 거짓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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