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집', 원작 팬들의 높은 기준을 맞추기엔 ..

아이즈 ize 영림(칼럼니스트) 2022. 6. 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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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영림(칼럼니스트)

사진제공=넷플릭스

어느 제국에나 개국공신이 있고, 어느 기업에나 창립 멤버가 있는 법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들은 점차 밀려나는 것이 순리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남겨놓은 유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유히 흐른다.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은 지금은 글로벌 OTT가 된 넷플릭스에겐  개국공신 혹은 창립 멤버급 대우를 받을 만한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달리 가면과 강렬한 붉은 점프 수트가 기득권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 된 것만 봐도 '종이의 집'이 지닌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에 리메이크작인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제작사가 금기의 영역에 손을 댄 양 '종이의 집' 골수팬들이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지난 24일 넷플릭스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 공개됐다. 첫 장면부터 평양 시내가 등장하고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 도쿄(전종서)의 등장은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케 했다. 

이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통일 직전의 한반도라는 이례적인 배경, 이 배경을 이용해 공동경비구역이 공동경제구역으로 바뀌고 그 안에 통일 한국에서 사용될 새로운 화폐를 제조하는 조폐국을 터는 상황을 설정한다. 원작인 '종이의 집'과 비교해 보면 이 설정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이에 더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강도단이 점거한 조폐국이라는 장소 자체를 하나의 작은 사회로 설정해 갈등을 유발한다. 통일 직전의 한국이라는 설정이 있어야 가능한 남한 출신 인질과 북한 출신 인질 간의 갈등과 불신을 조장해 시청자들이 인질들 한 명 한 명의 심리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도록 유도한다. 

실제 '종이의 집' 원작에서도 인질들이 소영웅 심리를 발휘하거나, 무모한 행동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은 늘 발생했다. (이것이 '종이의 집'의 전부다!) 그리고 조폐국 밖에서 이를 통제하고 한 수, 두 수 앞을 내다보는 교수의 존재가 '종이의 집' 원작을 다른 범죄 드라마와 차별화하는 결정적인 차이였다. 

하지만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는 교수의 존재가 큰 빛을 발하지 못해 아쉽다. 안경을 올리는 방법부터 특별했던,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만 지극히 사회성이 부족해 보였던 원작의 교수와 달리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교수는 이 모든 범죄를 계획한 흑막 그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유지태가 만들어낸 교수는 심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평범하다. 

하지만 유지태의 교수가 매력이 없는 이유를 굳이 배우 탓으로만 될릴 수는 없다. 책임을 전가하자면 각색의 탓이 크다. 원작 '종이의 집'에 비해 강도단을 비롯해 캐릭터들이 대체로 밋밋하다.  

원작 '종이의 집'의 강도단은 한국판 리메이크작보다 훨씬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거액을 훔친다는 공동 목표 외에도 물 밑에서 소용돌이치는 강도단 멤버 개개인의 욕망을 숨기지를 않는다. 심지어 이들은 성욕도 숨기질 않는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이런 노골적인 욕망이 드러나면서 강도단 멤버들은 더욱 입체적으로 변했고 자연스레 시청자들도 그들이 무사히 빠져나와 돈을 가지고 달아날 수 있기를 바랐다. 

반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어떤가. 외견상으로는 원작 못지않은 개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6부까지 지켜본 결과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다. 애정이 생기지 않으니 러닝타임 내내 이들이 무사히 조폐국을 빠져나갔으면 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각자 이유가 있겠지만 다들 목숨 걸고 여기 온 거야"라는 도쿄의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무개성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강도단이기에 이들이 벌이는 탄핵 및 리더 교체의 당위성도 설득력을 잃는다. 강도단의 무개성이 교수라는 캐릭터가 지닌 특이성을 떨어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들을 '오합지졸'로 보이게 한다. 

기존의 '종이의 집' 팬들이 이 작품을 봤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원작이 준 카타르시스를 다른 배경에서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강도단이 정부로 대표되는 기득권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찔한 순간을 목격하며 대리만족을 경험해보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교수의 신묘한 전략을 통해 압도적으로 그들을 두뇌 게임에서 찍어 누르고, 기득권은 고작 벙 찐 표정을 짓거나 책상을 내리치는 것뿐이라는 데서 오는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아쉽게도 이번에 공개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 그 정도의 쾌감을 기대하긴 힘들다.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그냥저냥 재미있게 볼 수도 있겠지만 원작 팬들의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함이 많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붉은 점프 수트에 하얀 하회탈이 크게 거슬리지 않다. 원작의 달리 가면보다 더 독특한 분위기를 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더한다. 

하얀 하회탈보다 더 거슬리는 건 오히려 도쿄의 내레이션이다. 기후 변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도 도쿄의 내레이션보다는 희로애락이 담겨있을 것이다.  극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충무로의 기대주' 전종서의 연기는 예상과 달리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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